[033] 우리, 불행을 전시하는 세상에 함께 살아요.

by 은도

“인스타 하세요? 아이디가 어떻게 돼요?”


그동안 나는 몰랐다. 이 질문이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묻는 것과 같은 흔한 말이라는 걸.

육지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지인들은 내가 SNS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곤 했다. 하지만 제주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SNS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는 예외적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사람들은 연락처보다 인스타 계정을 먼저 물어왔다. 그게 나에게는 꽤 생소하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 계정이 있긴 한데 제가 인스타를 안 해서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묻는다. “왜 안 하세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지만, 오히려 할 말이 많아서 대개 이렇게 답변하곤 한다. “그냥, 원래 안 해요.” 그 단순한 말 안에는 많은 이유가 숨어 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서, 게시물을 올린 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스트레스받을 것이 싫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도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이 부스러기 같은 고민까지 놓아버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033] 새.jpg 제주시 광령리


인스타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 만큼 인스타가 인간 세상을 장악할 때까지도 나는 앱조차 깔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워터파크에 놀러 갔을 때, 인스타 팔로우를 하면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는 말에 넘어가 나는 그 자리에서 앱을 설치하고 계정을 만들었다. 그 후로 가끔 인스타에 접속해 게시물을 구경하곤 했다. 그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고, 유명인도 있었고,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음식 사진, 여행 사진, 데이트 사진, 자신이 받은 선물 사진...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과 글을 게시했다. 부러움과 친근함이 섞인 댓글들이 달렸다. 그 세상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했고, 여유로웠고, 서로서로 친했다. 그런 타인의 삶을 엿보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게 되고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삶에 만족하며 딱히 불만을 느끼지 않던 때도 말이다.


내 삶이 불행하다 느껴졌을 때 SNS 속 세상은 내게 너무 가혹했다. 불행한 사람이 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 너도나도 앞다투어 행복을 전시하는 세상, 행복을 경쟁하는 세상. 불행한 내가 낄 자리가 없는 세상이었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휴대폰 액정을 스치며 끝도 없이 타인의 행복을 길어 올렸다. 그것이 스스로 깊은 우물을 파내어 그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뇌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버린 사람처럼 손가락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033] 고양이.jpg 제주시 해안동


다행히 그 우물에 몸을 내던지기 전,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행복이 아닌 불행을 전시하는 세상, 나의 불행을 먹고 누군가가 위로받기를 바라는 세상, ‘너만 아픈 건 아냐, 아픈 건 네 잘못이 아냐.’ 말하며 품어주는 세상, 글 속 세상이었다. 그 품은 너무 따뜻했다. 앞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가 속하고 싶은 세상은 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을 찾아 나는 글쓰기 클래스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 불행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은 참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디까지 담아야 할까, 다른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앞섰다. 불행을 전시한다는 건 행복을 전시하는 일보다 훨씬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진짜 이야기는 숨겨둔 채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야기만 쓰는 선택을 했다.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수면 위만 맴도는 새처럼. 글쓰기 선생님은 내 글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 말고, 은도씨 본인 이야기를 쓰세요.”

“더 쓰세요. 더 드러내서 쓰세요.”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슴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득 담아둔 채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겉모습이 주던 인상은 ‘우아한 사모님’이었다. 은퇴 후, 큰 집에서 남편과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 그녀의 글 속에는 남편을 여읜 후 무너졌던 시간, 아픔 속에 자신을 방치했던 날들, 그리고 이제는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삶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낭독이 끝나고 강의실이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타인이 꺼내놓은 아픔에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다정이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녀의 아픔을 통해 내 아픔을 마주하고, 그녀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독임을 내게 건네고,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깊이 위로받고 있다는 걸.


그녀가 보여준 용기 덕분에 나도 용기 내어 내 이야기를 썼다. 이혼의 경험과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을 글에 담았다. 그 글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기 전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는 덜덜 떨렸고 호흡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속마음을 그날 나는 만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았다. 낭독이 끝나고, 가빠진 호흡을 고르며 나는 침묵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그 무거운 공기가, 숨 막히는 정적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사람들은 하나둘 자기 이야기를 했다. 두 달 동안 우리는 경청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033] 눈사람.jpg 제주시 오라이동


나의 불행을 전시한다는 건 행복을 전시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불행이라고 믿는다. 나는 SNS 속 세상을 부정할 생각도, 그곳에 속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곳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며,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소중한 곳임을 안다. 나를 드러내며 내 존재를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위안을 얻는 공간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SNS라는 평면적인 세상에는 다 담을 수 없는 우리 각자의 입체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SNS라는 수면 위에 결코 담을 수 없는 깊은 심연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다만, 우리가 가끔은 그 이면과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한다. 타인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행복을 전시하는 세상보다는 불행을 전시하는 세상에 속하고 싶다. 누군가가 SNS 속 세상에서 밀려나 방황하던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품어줄 세상을 만났으면 해서.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그에게 내가 발견했던 세상의 존재를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불행은, 내 삶은 충분히 가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다.


우리, 불행을 전시하는 세상에 함께 살아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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