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눈이 좋아요. 눈을 보면 아이도 어른도 순수한 설렘을 느끼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눈이 좋아요.”
사각거리다 이내 녹아버리는 새하얀 우유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먹으며 어떤 이는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런 낭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직 있었다니. 눈 결정의 모양을 잃지 않은 채, 내 소매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발견했을 때만큼 기뻤다.
어릴 땐 눈이 오는 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질퍽거리는 눈을 밟아 옷이 더러워져도, 눈길에 미끄러져도,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할 생각에 마냥 신이 났다. 내가 신이 났던 만큼 어린 내 눈엔 온 세상이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눈이 오면 “와! 눈 온다!”라는 들뜬 외침보다 “하... 눈 오네...”같은 한숨 섞인 외마디 탄식이 더 자주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눈을 부르는 말을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삽으로 눈을 끝없이 퍼내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단어로 그들의 노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눈의 무게를 감당해 본 적이 없던 내게 눈은 여전히 쓰레기가 아닌 새하얀 낭만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었던 나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매일같이 왕복 3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고된 일상을 살았다. 특히 눈이 오는 날 출퇴근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에는, 마치 재난 영화 속 안전 구역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려는 장면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그렇게 몇십 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도착한 열차는 이미 만원. 그때 느껴지던 절망감과 막막함은 내 안에서 눈을 낭만이 아닌 불청객으로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앉아 문득 내다본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으면, 본능적으로 가슴이 뛰었다. 설렘이 벅차오르다 비로소 “우와~” 같은 감탄사로 터져 나오면, 뒤이어 퇴근길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비로소 눈의 무게를 알게 된 나는 그렇게 무미건조한 어른이 되어갔다.
그러니까 눈은 순수한 설렘이라던, 그래서 눈이 좋다던 그의 말은 잃어가던 내 안의 낭만을 다시 살려놓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제주에 친구가 찾아왔다. 그녀를 숙소에 데려다주기 위해 중산간 도로를 타고 밤길을 달리던 중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언덕길을 오를수록 눈발이 굵어졌다. 제주에서 눈을 맞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을 알았기에 나는 고민했다. 잠시 멈춰 눈을 맞고 가자고 해야 할지, 안전할 때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할지. 눈길 운전에는 영 자신이 없던 터라,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가 그동안 눈이 쌓이면 어쩌나, 그래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짧은 시간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였을까, 어느 순간 머릿속이 잠잠해지고 단 하나의 생각만 남았다. ‘눈을 맞고 가야겠다.’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잠시 내려서 눈 맞고 갈까요?” 내 말에 그녀는 기쁘게 응했고, 나는 도로 한편에 차를 세웠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보던 눈은 차창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는 얼음덩어리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차에서 몸을 빼내던 순간, 나는 그림 속 멈춘 시간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굵은 눈송이들이 느리게, 아주 고요히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낭만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맨살로 눈송이를 받아들였다. 무게가 거의 없는,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뛰놀았다. 도로에 눈은 쌓여갔지만, 우리는 꽤 오래 함께 눈을 맞았다.
이제 눈이 오면 나는 어떤 이가 말한 ‘순수한 설렘’을 떠올릴 것이다. 늦은 밤, 아무도 지나지 않는 제주의 깊은 곳에서 함께 눈을 맞은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과 나누었던 그 낭만은, 앞으로도 눈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갈 내 삶에 작은 불씨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