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디스크 환자를 위한 관리지침과 마음근력 훈련
애착 아이패드를 새끼처럼 품고 다닌 지 4개월째,
나의 경추 디스크들은 탈출에 성공했다.
십수 년을 음악인으로 살아온 새럼으로써 ‘그림을 그린다’는 새로운 행위는 설렘 그 이상이었지만 결국 부상 피날레를 맞이한 것이다.
올해 봄은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었다. 아침수영을 하고, 핸드드로잉 수업을 듣고,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난 후엔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 삶. 뿌듯하고 희망찼다. 비록 아직은 백수지만 곧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설렘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땐 몰랐지만 데미지는 성실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1
하루에 최소 7시간 그림을 그렸다. 초심자의 행운으로 가파르게 늘어가는 실력과 + 빨리 뭔가를 해내고 싶음 마음이 더해져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저녁도 대충 때우고 10시간씩 그려제꼈다. 자세라도 좋았다면 나았겠지만, 난 그저 한 마리 히키코모리 거북이가 된 채 하염없이 하얀 네모 속에 살았다.
#2
그 와중에 저질체력 극복하고 (그놈의) 갓생을 살겠다며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했다. 아침엔 수영, 저녁엔 웨이트로 몸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의지를 써서 하는 운동은 피곤함을 축적했다. 측면호흡을 마스터하리라며 과도하게 목 회전동작을 반복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으리라.
#3
화룡점정으로 음원을 발매 ’해.버.리.겠’다는 선택을 했다. 속전속결 발매일을 잡고 마감을 치기 위해 책상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믹스마스터를 하고, 뮤비를 위해 애니메이팅 노가다를 했다. 혼자 하기엔 두 달도 모자란 과정을 2주 안에 해치우느라 작업실 지박령이 될 기세였다.
결국, 멈추지 못한 죄...
땅땅땅.
나의 경추 디스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탈출했다. 거의 기어서 병원에 갔다. 두 달간 누워 지냈고, 막판엔 차도가 없어서 입원을 했다. 다행히 명의를 만나 수술까지 가지 않고 퇴원.
하지만 당연히 나의 일상은 올스톱 됐다.
열정이 부른 참사였다. 무식하게 달리다가 되려 백보 후퇴하고 만 것이다. 작업은커녕 일상이 불가했던 시간들은 그래도 어찌어찌 흘렀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질도 못하던 단계를 지나 정상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고, 조금씩 작업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므로 관리지침을 만들고 지키기로 했다.
#1
일단 모션데스크로 계속 자세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2
한 시간 단위로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일을 멈춘다. 스트레칭을 하고 물도 마시고, ’이게 더 빠른 길이다.‘ 생각하며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매정하게 싹둑- 잘라낸다. 한걸음 빨리 가려다 백 걸음 뒤쳐진 이번 사태를 되새기며 열정으로 위장한 조급함을 길들여 나간다.
#3
고개를 숙이는 동작은 최대한 자제하지만 천장을 보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숙인 시간만큼 누워서 회복해 준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작업시간은 반토막 난다. 하지만 이 또한 조급한 마음이다.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고 명상하듯 누워있어야 한다. 누워서 폰 들여다보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놈아.
#4
집안일은 답답해도 토마스 칼라를 끼고 한다. 틈틈이 신전동작을 해주고 설거지는 아래 찬장을 활짝 연 채 스퀏 자세로 한다. (가관이다) 최대한 정면을 보고 코어에 힘을 준 채 손끝의 감각으로 설거지를 한다. 그조차도 하다가 힘들면 눕는다. 저녁메뉴는 최대한 심플하게 덮밥이나 샐러드 같은 한 그릇 요리로 하고 청소기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돌려야 한다.
#5
글을 쓰거나 톡, SNS를 이용할 때는 음성메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행히 나의 작업실은 집이라,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다. (딕션이 좋아지고 혼잣말이 늘고 있다.)
#6
자기 전에는 셀프 목마사지로 흉쇄유돌근, 사각근, 소흉근을 풀어주고, 베개 높이와 수면자세에도 신경을 쓴다.
#7
주중에 외래치료를 열심히 받고, 한방병원 운동치료사님이 가르쳐준 운동을 무리가 가지 않게, 매우 하찮게) 꾸준히 한다. (하찮은 게 포인트)
#8 마음 웨이트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야생마처럼 날뛰는 내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다.
열정으로 위장한 나의 조급함은 평생을 떨치지 못하는 그놈의 인정욕구에서 왔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왔다. 버겁고 까다로운 내 마음 놈을 길들이기 위해 ‘내면소통’을 읽고 있다. 작년에 인정욕구에 관한 책 소개 영상을 보고 사두었지만 그림 그린다고, 음원 낸다고, 먼지만 쌓여가던 책인데 알고리즘의 인도로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집어 든 책 제목 밑에 작게 적힌 ’마음근력 훈련‘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두 달간 누워있느라 근손실 왔다고 징징대던 차였는데 아... 내게 또 다른 웨이트가 필요하구나. 하고 뒤통수를 후려쳐주는 문구였다.
저자인 김주환 교수는 우리 뇌를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자기긍정, 타인긍정‘ 외에는 없다고 강조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는데 ‘자기부정, 타인부정’에 당당히 당첨되었었다.) 일단 자기부정이 높으니 당연히 행복하기 힘들뿐더러, 행복해지기 위해 남의 인정이 필요하게 되고, 그걸 얻으려고 미친 듯이 달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것 같다.
’내가 나에 대해서 뿌듯하게 느끼고, 나를 따뜻하게 긍정하면서 행복을 지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 이 순간부터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내 능력을 키우고 대단한 결과물을 내어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용서하고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보살핌을 느끼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를 철저하게 수용하고 감사하며
나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하면 된다고말한다. 이걸 하면서 시간이 남고 좀 심심하면 그때 일도 좀 하라고 한다.
얽매이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나는 완전히 반대로 살아왔다.
뭔가를 이루어 내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거라고, 새롭고 거대한 좋은 무언가가 찾아올 거라고 믿으며, 얽매이고 집착하며, 차갑고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작년에 10년 넘게 (먹고 살기 위해 꾸역꾸역)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내심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무얼 하든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던 것 같다.
음악도 그림도 글도 사진도. 순수하게 즐기고 있을 때는 잠시 행복하다. 하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이걸 더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히고 만다. 어느 순간 전혀 즐겁지 않은 퀭한 눈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책 한권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평생의 습관이나 마음가짐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의 차갑고 단단한 마음에 균열을 내어주었다. 힘껏 밟고 있던 엑셀에서 발을 떼고 느린 속도로 그냥 존재하면서 구름의 모양을 살펴 볼 줄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점령당하는 시간이 더 길지만, 천천히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찾아봐야겠다.
여기까지 목 디스크 탈출로 마음공부할 기회를 얻은
럭키비키 멋진 백수 예술가의 주절주절...아니 멋진 글이었습니다... (자학개그에 익숙해서 너무 어렵다 이거...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