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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Nov 20. 2024

예술적인 사업 따윈 없다



2021년 여름.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모기장과 우산을 팔다가 석 달만에 닫았지만 매출이 일어났고 흑자였다. 하지만 재고부족 상황의 CS한판에 나는 멘탈을 잃고 스토어를 닫았다.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시작해서 쾌속으로 그만둔 호탕한 실패였다.



2집 작업을 전면 중단한 채 벌린 일이었기에 그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예술은 그만하고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등의 자기 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부동산 공부를 하고 돈 버는 법에 관한 영상들을 봤다. 맘먹고 열심히 하면 몇 년 후에 성공한 사업가나 투자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냥 백수다. 하던 거나 했으면 돈은 여전히 부족해도 정규앨범 하나는 더 냈을 텐데, 음악작업은 거의 못했다. 그렇다고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사업자를 한번 내보니 실물이 있는 무엇의 리스크가 싫었다. 컴퓨터와 친하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내 능력을 자본 삼아 무자본 온라인 컨텐츠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숱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사업이 아닌 예술을 하고 앉아있었다. 도구만 음악에서 영상으로, 사진으로, 글로, 그림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온갖 도전과 온갖 실패를 겪으며 너덜너덜 3년이 흘렀다. (또) 순삭 된 ‘실패의 2024년’을 뒤로하고 ‘퓨처셀프’를 읽으며 ‘성공의 2025년’을 지치지도 않고 꿈꾸던 오늘, 너무나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



5년 후, 미래의 나를 선택하라니...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그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예술가인가 사업가인가...?



음악작업을 그만 둘 당시 ‘부의 추월차선’을 읽고 정리한 사업계획서 뭉텅이는 3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었다. 갑자기 생각난 그 A4뭉텅이를 소환했다. ’미래의 나‘를 ’정하기‘ 위해.



과거의 나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음악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술적인 사업‘을 하려는 근본 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게 웬 공감각적 심상 같은 소리냐. 남성이자 동시에 여성이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게 웬 자웅동체 같은 소리냐.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깨달았다.


‘음악교육’이 ‘음악’이 아니듯

’음악사업‘은 ’음악‘이 아니다.


사업가를 택하면 이타적으로  

예술가를 택하면 이기적으로

철저히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과거의 내 개소리들을 보고 깨달았다. 이타적인 음악을 만드는 예술적인 사업 따윈 없다. 그냥 개말장난이다.


나는 부의 추월 차선을 토대로 예술과 사업을 멋대로 믹스해서 내 음악이 인기를 얻고 성공하려면 이타적인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자빠져있었다. 이게 뭔 신선함도 없는 개소린가. 나는 스스로 만든 꼰대피디를 내 안에 품고 내 음악을 난도질하며 여 자르고 저 자르라고 떠들어댄다. 이러니 음악을 만들고 싶을 리가 있나.


반면 온라인 컨텐츠 사업을 하겠다는 놈이 예술을 하고 자빠진 현장도 꼴사나웠다. 대중의 니즈를 살펴야 할 타이밍에 내 탐미적 시선과 취향에 놀아나 컬러그레이딩과 디자인에 심취하고, 출간이라도 할 기세로 쓴 자막에 철학을 녹이고 지랄이었다. 1시간 걸릴 편집을 10시간씩 하고 있으니 지속성이 생길 리가 있나.



나의 큰 착각이 와장창 깨졌다는 것 자체로 오늘을 칭찬하자. 개소리로 가득한 A4들을 호탕하게 찢으며 다시 고민한다. 5년 후의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5년 후에도 (조금 커진) 나의 작업실 안을 유령처럼 홀로 서성이는 나를 상상했다. 불현듯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두둥실 떠오른다. 이 안이 아닌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내 안으로 가라앉아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저 밖으로 나가 너를 생각하며 대차게 부대끼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이기적인 걸...) 편안한 운동복 대신 오버사이즈 자켓을 입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기깔나게 나의 스파크의 엑셀을 밟고 싶다. 세상으로 달려가는고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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