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이 되자

명랑하고 결연하게

by 은도

지리산에서 휴가를 보낸 날아가 완주에 왔다. 닷새 동안 매일 계곡 수영을 한 탓에 피부가 벌겋게 그을려 있었다.


“너 여름휴가 제대로 누렸구나.”

“행복했다. 근데도 수영은 아직 모자라.”


모자란 사람치곤 개운한 얼굴이었다. 웃음이 났다. 날아는 짐이 가득한 트렁크를 뒤적거리더니 의기양양하게 검은 봉투를 꺼냈다. 계곡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만든 튀김과 갓 딴 제철 과일이란다. 그러곤 폭포 앞에서 잠자리채를 들고 물고기를 낚는 사진을 보여주며 천진하게 웃었다. 얘는 좋은 것을 흠뻑 누릴 줄 안다 생기를 회복하는 법을 안다. “넌 어쩜 그렇게 아낌없이 빠져들 줄 아니. 행복해지는 데에 노련하구나.” 하자 날아가 대답했다. “옆에 꼭 붙어서 내게 오염되도록 해라.” 나는 얘가 이럴 때마다 반한다. 자신으로 태평한 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개다. 나도 그걸 갖고 싶었다. 오래오래 얘 옆에 서성이면서 그 기개를 나눠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방 자리를 계약하고 오픈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날이 쫄보가 되어갔다. 숭덩숭덩 줄어드는 통장의 숫자를 보고 있으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돈을 모으기만 해봤지, 이렇게 돈을 써본 적은 처음이었다. 자영업자가 된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게다가 책방이라니. 건물주 아니면 못 한다던데 그거… 밑천도, 대책도 없이 꿈으로 돌진한 나를 요목조목 탓했다. 그럴 때 태평의 대가, 날아가 지리산을 누비고 완주로 온 것이다. 호방한 방랑자처럼 유유히.


날아는 돗자리 펴듯 평화를 펼쳐 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꾸물거리고 있으면 “굿모닝” 인사를 건넸다. 부스스 이부자리에서 손만 뻗어 책을 집어 읽다가 “이거 공유하고 싶어.” 하고 문장을 낭독했다. 우리는 나갈 준비를 하다가도 선풍기 앞에 드러누워 수다를 떨었고, 책 선물을 주고받고 신이 나 막춤을 췄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나란히 누워 세상이 흘러갈 최악의 시나리오를 주거니 받거니 상상했다. 최악을 상상하며 잠들었어도 아침엔 전부 지워진 듯 “굿모닝” 인사를 했다. 와중에 돈 생각도 자주 했다. 좋은 순간을 듬뿍 맛보고 나니 앞으로 사는 내내 이걸 갖고 싶어졌다. 돈의 쓸모가 또렷이 보였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 돈을 써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돈을 벌어야 가능했다. “행복하다.”하고 말하면 날아는 명랑하게 “짱이 되자.” 하고 대답했다.


“짱이 되자. 짱이 되어서 5년쯤 뒤에는 같이 살자. 이런 날들을 함께 보내자.”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짱이 되든 말든 하루하루가 이미 짱일 것만 같았다. 나는 이걸 당장! 내내! 누리고 싶어! 마시멜로를 기다리지 않고 냉큼 먹고 싶었던 나는 날아의 태평함이 야속했다. 너는 나만큼 행복하지 않은 거야? 이걸 놓고 싶지 않을 만큼 간절하지 않은 거야? 동시에 알고 있었다. 각자 몫의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완주에 당장 오라고 적극적으로 꼬실 수 없는 상황이며 나 역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책방지기와 타투이스트로 막 한 발짝을 뗀 우리에겐 당장의 생계가 시급했고, 이 새 도전은 갖고 싶은 행복의 또 다른 요소이기도 했다.


짱이 되자. 날아가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다짐은 명랑하면서도 결연했다. 그 말 속엔 어쩔 도리 없는 현실을 수긍하는 단단함이 있었다. 그게 얘가 품은 태평함의 기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짱이 되자.” 말하며 태평하고 끈질기게 나아가는 힘. 초조해지고 성마른 마음이 되어도 어떻게든 평화를 부려내며 원하는 방향으로 걷는 힘. 함께 하는 휴가 동안 우리는 행복할 때마다 짱이 되자며 웃었다. 그렇게 웃다 보면 짱이 되지 않은 채 평화를 누리는 지금도 충분한 것 같았고 짱이 될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어 그쪽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분명히 도착하게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짱이 될 것이다. 짱이 되자.





IMG_9657.HEIC 마음만은 짱이 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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