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시간
이번 겨울 방학 동안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중에 네가 자주 가는 카페 커뮤니티에서 영어 캠프 소식을 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도 모르게 이끌려 설명회를 듣고 '이거다!' 싶었다.
3주 동안 영어 공부 이외에도 코딩, 체육, 진로 교육, 인문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덜컥 신청서를 보냈다.
나는 원래 계획적이고 재고 따지고 하는 편인데 가끔은 이렇게 대범하게 결정할 때가 있다. 확 끌리는 기운 같은 것이 있어서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돈이었다. 하나면 어찌해볼 만도 한데 둘을 같이 보내려고 하니 돈도 두 배라 만만하지가 않았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보았고 같이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남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고 무리스러웠지만 결국 두 아이를 캠프에 데려다주었다.
갑자기 아이들과 떨어져 3주를 보낼 것을 생각하니 짐을 싸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 잘 수 있을지, 잘 먹을 수 있을지, 많은 아이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대담하게 결정한 것 치고는 불안감과 염려가 밀려들었다.
도리어 아이들은 담담했고 씩씩하게 캠프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나는 진정 해방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동안 나를 짓눌러 왔던 많은 일들로부터 나는 해방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캠프에 들어가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트에 가서 인스턴트식품을 잔뜩 사 오는 것이었다. 가장 해방되고 싶었던 곳이 바로 주방, 요리였나 보다.
컵라면, 김밥, 3분 카레, 빵, 부어서 끊이기만 하는 요리들로만 장바구니 채웠다. 채소 고기 하나 없이...
그리고 일주일 내내 계란프라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을 쓰지 않을 정도로 요리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일주일 되니 좀 질리기는 했지만 몸에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지만 너무 편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내가 진짜 먹고 싶은 시간에 끼니를 때웠다.
배가 고픈지 아닌지 생각도 할 겨를이 없이 항상 시간에 맞춰 종종 거리면서 밥을 해대던 것이 가장 싫었던 것처럼 나는 오전 10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허기가 지면 그때 밥을 먹었다.
나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해야 했던 의무에 얽매여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철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욕구에 의해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언제 먹고 싶은지, 오늘은 무슨 활동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하나씩 실행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그동안 억눌려 왔던 소소한 소망들이 마구 솟구쳐 올라왔다. 전시회 가기, 글 쓰기, 먹고 싶었던 음식 먹으러 다니기, 저녁에 술집 가기, 영화 보기
누가 보면 감옥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의지만 있었다면 아이들이 있건 없건 다 할 수 있는 활동인데 나는 그동안 귀찮다고 빡빡한 하루를 보내느라 다른 것들을 할 의욕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집안일로부터 해방이 되고 나서야 도리어 나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소리 없이 죽어지내던 나의 작은 욕구들에 대해 '너희들 거기 그렇게 있었구나, 이제 내가 다 돌봐줄게'라고 속삭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맘대로의 일주일을 보냈다. 아이들의 모습은 매일 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뚫어져라 사진 속 아이의 표정까지 살피며 점점 편안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며 안심을 한다.
아이들에게도 이번 캠프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부모와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값진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일주일에 2번 집으로의 통화 시간이 주어지는데 큰 아이의 목소리에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를 끊을 때 '엄마 사랑해'라고 말을 듣고 울컥했다. 다 큰 아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지 오랜만이라 나 역시 사춘기 아들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해 보았다.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떨어져 있지 않기에...
앞으로의 시간 역시 하루하루 나를 소중하게 돌보는 시간으로 어쩌면 다시 오기 힘든 이 해방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