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만/보리출판사
아이와 새를 보기 위해 숲을 걷던 중 새들이 낙엽 위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았다. 얼마나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길래 저리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까. 사람이 가까이서 보고 있는데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저마다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몰두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저게 무슨 행위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먹이 활동 중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겨울철 낙엽 아래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잔뜩 몰려 있는 건지 궁금하다.
겨울이 되면 빨간 열매를 부리로 쪼아서 먹고 있는 새들을 볼 수 있다. 동백꽃에서 꿀을 빨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동박새도 동백꽃이 피기 전에는 빨간 열매를 먹고 잡식성으로 알려진 직박구리도 먹을 것이 없는 1, 2월에는 꽃사과를 쪼아 먹는다. 빨간 열매는 작은 보석처럼 메마른 겨울 풍경을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새들의 비상식량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는 이미 애기동백이 만개했다가 저무는 중이고 매실나무에는 때 이른 매화가 하나둘 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새들은 아직 꽃에 흥미가 없다. 얼마 전에는 길을 걷다 가로수 근처에서 까마귀를 봤다. 어린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가가자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거리를 좁히며 가로수 아래에 풀을 부리로 뒤적거린다. 열매가 있나? 벌레가 있나? 까마귀는 얼마 후 작은 알갱이 같은 걸 물고 나무 위로 날아갔다. SNS에서는 겨울철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새들을 위해 견과류를 나눠주는 사람들 영상도 종종 올라온다.
<새들의 밥상>은 뒷산에서 관찰한 새들의 먹이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새들이 낙엽과 풀밭에서 찾던 것이 잠들어 있던 벌레와 애벌레,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들풀의 씨앗이라는 걸 알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고 인간에게도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새들에게도 제철 먹이가 있을 수 있겠다. 새 도감이 아닌 새들의 먹이 만을 관찰한 책이라니, 새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다양한가?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밥상을 기록한 책이니 식사에 필요한 도구 소개 역시 빠질 수 없다. 새들이 주로 섭취하는 먹이에 따라 다른 모양의 부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의 먹이에 따른 부리 모양을 알 수 있다. 인간들이 주식에 따라 도구를 달리 쓰는 것처럼 새들도 주식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다르게 진화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새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이, 벌레
견과류나 쌀, 열매, 꿀을 먹는 새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새들은 벌레로 단백질을 얻는다. 새들이 없었다면 여름날이면 창궐하는 벌레들을 다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름마다 새로운 골칫덩어리로 불리는 러브버그를 우리나라 새들이 드디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수많은 러브버그를 먹고 자란 새들은 또 종잡을 수 없이 개체수를 늘려가겠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벌레보다 새들에게 관대하다.
새들이 얼마나 다양한 벌레를 잡아먹고 또 벌레들과 열매를 두고 경쟁을 하는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새들은 꽃과 잎순, 꿀, 벌레, 그리고 우리가 먹는 열매와 먹지 못하는 열매까지 아주 다양한 동식물에서 영양분을 얻고 있다. 작년 가을,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길가와 공원에 있던 풀들이 전부 베어져 사라졌다. 그곳에 살던 벌레, 애벌레, 달팽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알고 보니 벌레뿐 아니라 새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에겐 쓸모없는 풀이니 깔끔하게 베어 내는 게 좋겠지요. 하지만 가을에 먼 길을 가다 지쳐 뒷산을 찾은 새들이나 겨울철 먹을 게 부족한 새들을 생각하면 그대로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없애려고 하는 풀들이 새들한테는 겨울나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먹이니까요.
앞서 말했듯 사람들 중에는 새들의 먹이활동을 걱정하여 산이나 집 앞에나 견과류나 쌀을 가져다 놓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새들이 위험하게 사람들 가까이로 다가와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새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원이나 땅의 일부에 들풀을 남겨두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새들의 밥상>, 그리고 소제목은 '뒷산 새 먹이 관찰 도감'이다. 그러나 읽고 난 소감은, 새들의 먹이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소개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것이든 골고루 먹는 새이니 만큼 책 안에는 사계절에 따른 식물의 변화, 곤충과 벌레의 변화, 그리고 새들의 생애도 엿볼 수 있다. 식생활이 인간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주는 것처럼 새들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