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크레스티드게코를 키우고 있습니다

작은 생명들과 함께한다는 것

by 은가비상점
저는 크레스티드게코를 키우고 있습니다


물생활에 빠져 살던 중,

어느 날 노원의 한 수족관에서

나는 이 작은 도마뱀을 만났다.


파충류에 관심조차 없었고,

아니 오히려 싫어했던 나였는데

‘크레스티드게코’라는 이 도마뱀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커다란 눈이 이쁘고 속눈썹이 매력적이고 손에 기분 좋게 달라붙는 이 작은아이에 나는

홀린 듯 거금을 들여 데려와 버렸고,

난생처음 파사모라는 네이버 카페에도 가입했다.

2021년 가을쯤의 일이다.


크레스티드게코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네이버 파사모 카페가 크레인으로 가득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제는 그 수가 너무 많아져버렸다.

그래서 이젠 크레스티드게코를 사람들은 ‘크레코인’이라고들 부른다.

생명체에 이런 수식어를 붙이다니,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크레스티드게코는 키우기도 쉽고 번식도 쉬워

너도나도 해칭을 해대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기가 대단한 만큼

그만큼의 수난도 함께 따라왔다.


먹이용 크레,

재활용 통 속의 크레,

쓰레기더미 속의 크레,

해부 크레….


조용할 만하면 반복되는 이슈들.

생명을 자신의 다른 반려동물을 위해

먹이로 사는 사람들.

키우던 크레를 무료로 던지듯 넘기는 사람들.

그리고 데려가 놓고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

무턱대고 해칭부터 해버리는 사람들.


모두가 다 문제고,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나도 생각한다.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가.


그래서 최대한 해칭을 많이 하지 않으려 하고,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

이미 한 해가 바뀌기 전

내 안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주의하라고.



다만 태어난 아이들을

쉽게 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있는 것이

나의 문제점이다.

그것을 놓는 것 역시

나에게 남은 숙제 같다.


잘 보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과부하된 시장에서

분양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료 분양을

선뜻 선택할 수도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도

나의 또 다른 숙제다.


동물을 좋아하고

개와 고양이의 번식에는 반대해 온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파충류의 번식에

손을 대 버렸다.


사실 올해 말이 되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애초에 나와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이미 이 길에 들어선 이상

나는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140마리의 크레스티드게코를

1년 반째 자연사육환경에서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 크레스티드게코의

자연사육환경이

당연한 기준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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