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프롤로그
나는 실패한 창업가다. 사실, 처절하게 실패했다.
80년대 중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유학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한 후 한국 최고의 로펌 김앤장에 스카우트됐다. 내 이력 어디에도 '실패'라는 단어는 없어 보였다. 변호사라는 안정된 세계를 박차고 나온 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진짜 가치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내가 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질 것 같다는 위험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뛰어들고 싶었던 바로 그 세계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40대, 50대를 보내며 좋은 나무를 여럿 심었다. 거목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몇 그루는 실제로 거목으로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하나도 내 집 담장 안에 있지 않다. 이제는 멀리서 그 나무들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애정과 기대를 쏟아부었던 만큼, 그 상실감은 깊었다. 한때는 세상을, 때로는 마지막 몇 계단을 오르려 할 때 (늘 어김없이) 찾아온 불운을 탓했다. 그 모든 실패가 결국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음을 온전히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상실감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지난 해 여름부터 별 뚜렷한 계획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지난 7월, 『창업 1년차 김사장은 어떻게 투자유치에 성공했을까』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창업자 '상훈'이 투자자 '영민'을 만나 창업자금 투자를 받는 과정을 담은, ‘성공’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 장면까지는 변호사, 투자자, 그리고 창업자로서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과정이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창업자와 투자자 간 치열하게 진행되는 투자 협상을 생생하게 담은 책이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는 독자들의 피드백도 많았다.
책이 나온 후, 몇몇 독자들이 물어왔다. "그래서 Magic Glove Korea는 어떻게 됐나요?" (Magic Glove Korea는 상훈이 창업한 회사의 이름이다.)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투자유치 성공은 여러 번 경험해 보았지만, 나는 창업가로서의 진정한 성공에 이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첫 책의 결말을 투자유치 성공 시점으로 잡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끝내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나는 창업가가 아닌 변호사로 돌아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더 논리적인 선택인지를 따지는 흑백논리의 사각형 프레임에 갇혔다. 때로는 회색 지대를 달려야 하고, 비논리적인 믿음으로 벼랑 끝에 서야 하는 창업과 기업경영의 세계에서, 나의 이성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나를 묶는 족쇄였다.
이제 용기를 내어 다시 펜을 든다. 이 연재는 성공 지침서가 아니다. 나는 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거친 파도를 넘으며 끝내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한 평범한 창업가의 항해일지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에서 나는 첫 책을 쓰며 만들어낸 가상의 회사 ‘Magic Glove Korea’의 고문변호사인 ‘이변호사’의 배역을 맡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해 보기로 했다. 때로는 창업자 상훈의, 때로는 투자자 영민의 입을 빌려 나를 가로막았던 도전과 시련, 그리고 현명하지 못했던 나의 선택들을 복기하고,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어쩌면 제3자의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봐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항해에 독자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한다. 댓글을 통해 당신의 경험과 지혜, 그리고 고민과 두려움을 공유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당신의 목소리가 창업자 상훈의 다음 선택에, 그리고 이 이야기의 다음 챕터에 반영될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