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의 7년을 위하여!!
2032년 10월 2일.
성수동 한강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Magic Glove Korea(이하 MGK)의 사옥은 미세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표이사 김상훈의 사무실, 통유리창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물결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가 가장 아끼는 정사각형 회의 테이블에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MGK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인 상훈, 그리고 그의 첫 투자자이자 7년간의 멘토였던 영민, 첫 투자유치 협상부터 MGK와 상훈의 고문변호사로 모든 여정을 함께한 이범수 변호사, 바로 나다.
테이블 위에는 내가 축하 선물로 가져온 레드와인 한 병과 서류 세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K그룹으로부터 MGK 주식 대금이 그들의 계좌로 입금되었음을 알리는 입금 확인서였다.
"자, 우리의 7년을 위하여!"
영민이 잔을 높이 들자, 와인 잔들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상훈의 넓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상훈님, 7년 전 오늘, 우리가 처음 투자 계약서에 도장 찍던 날 기억나세요? 그때는 우리가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영민의 나직한 질문이 과거의 문을 열었다. 상훈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그때는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였죠. K그룹에 회사를 판다는 건 상상도 못 했고, 당장 다음 달 직원들 월급날이 돌아오는 게 공포였는데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네요."
와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영민님과의 시드 라운드(seed round) 투자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 제 클라이언트의 소개로 김대표님이 제 사무실을 찾아 와서 자문을 부탁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첫 창업이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면서 제발 좀 도와 달라고 하셨죠. 어찌나 절박해 보이시던지..."
나의 말에 상훈과 영민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저는 그날 상훈님의 그 절박한 눈빛 너머로 창업자로서의 굳은 의지를 봤습니다. 잠깐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MGK를 창업하게 된 이유와 사업내용에 관해 저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떨리던 눈빛이 사라지고 창업자로서의 확신과 열정이 회의실을 가득 채우더군요. 30분 넘게 계속된 설명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성공할 수 있겠는데?'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선물로 가져온 와인은 샤또 라 꽁세이앙뜨(Chateau La Conseillante) 2026년 빈티지로, 내가 3년 전인 2029년 여름 보르도 지역 와이너리 투어를 갔을 때 너무나 감명 깊게 테이스팅을 한 후 구입해 온 와인이다.
"아시다시피 제가 꽤 비싼 변호사 아닙니까. 시간당 70만원씩 타임차지(time charge)로 자문료를 청구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MGK의 은행계좌에 큰 구멍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훈님에게 자문료 관련해서는 고민을 좀 해본 다음 이메일로 제안을 드리겠다고 했죠. 하루 정도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회사 주식을 받으면 의미가 있을까? 독점수입해서 판매한다는 매직 글로브라는 작업용 장갑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어도 상장하기는 어려운 회사인 것 같은데... 하지만 결론이 의외로 쉽게 났습니다. 현금 대신 주식을 받자로. 매출과 이익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분명히 MGK를 인수하려는 회사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창업자 상훈님이 잘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에게 오늘같은 날이 올 거라고 어느 정도는 기대했죠. 하하."
와인 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던 상훈이 내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꺼냈다.
"사실 이변호사님과 처음 만난 날, 이변호사님에게 홀딱 반했었습니다. 진심으로 창업자인 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시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꼭 이변호사님과 함께 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변호사님의 자문료 제안 메일을 꽤나 애타게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변호사님으로부터 '자문료 제안'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온 것은 다음 날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MGK의 자본금은 2억 원이었고 창업자인 김대표가 액면가 500원인 보통주식 40만주를 전부 보유하고 있었다. 나의 제안은 이러했다. 자문료를 1,000만원으로 하고, 나는 그 1000만원에 내 돈 1000만원을 더한 2000만원으로 주당 액면가 500원의 2배인 1,000원에 김대표가 갖고 있는 MGK 보통주식 2만주를 매수하겠다는 내용으로, 내가 결과적으로 MGK의 첫 투자자가 되는 구조였다. 그렇게 되면 나는 MGK의 총발행주식수 40만주 중에서 2만주를 갖게 되어 5% 주주가 된다. 5%를 제안한 것은, MGK가 앞으로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자금조달을 위한 유상증자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발행주식수가 많아져 지분율이 절반 이하로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변호사님의 이메일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투자회사에서 큰 투자를 한 경험과 직접 창업을 해서 기업을 경영한 경험까지 갖고 있는 이변호사님이 MGK의 주주 겸 고문변호사가 되어 자문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너무 기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5%, 주당 1000원, 2000만원... 이런 숫자들이 저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죠. 제가 메일 회신을 하면서 이변호사님에게 두번 째 회의를 제안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고민을 꽤 오래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