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 변호사
7년 전의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상훈을 다시 만난 것은 자문료 제안 메일을 보낸 후 5일정도가 지나서였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상훈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더 빨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좀 늦었네요. 이 변호사님이 메일로 제안하신 내용을 소화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상훈은 말을 이어갔다.
"기본적으로 저는 이 변호사님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5%라는 지분율이 좀 높은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는데, 저와 Magic Glove Korea에 대한 이 변호사님의 믿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액면가가 아니라 액면가의 2배인 주당 1000원에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부분도 이 변호사님의 창업자에 대한 존중의 표현인 것 같았구요... 제가 잘 소화한 것이 맞겠죠? 하하"
"제 의도를 정확히 읽으셨습니다. 김대표님이 동의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제가 이메일로 제안드렸던 내용을 반영한 주식매매계약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2부 출력해서 갖고 오겠습니다."
나는 계약서 2부를 출력하여 다시 회의실로 돌아와 상훈에게 건내어 주었다. 상훈은 계약서를 잠시 살펴본 후 자켓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상훈에게서 받은 계약서 2부에 법무법인의 사각형 직인을 날인하면서 나는 상훈에게 말했다.
"이제 한 팀이 됐네요. 앞으로 MGK와 김대표님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자문을 해드리겠습니다. 작지 않은 지분을 흔쾌히 넘겨주셨으니 저도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MGK가 1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때까지는 자문료를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MGK의 첫 외부 투자자이자 고문변호사가 되었다.
이쯤에서 내 소개를 좀 해야할 것 같다. 이.범.수... 나는 15년전까지는 국내 대형 로펌의 파트너로 기업투자와 M&A 관련 분야에서 꽤나 유명세를 갖고 있던 변호사였다. 수천억, 때로는 조 단위의 돈이 오가는 거래의 최전선에서 고객을 자문했다. 모든 거래의 시작과 끝을 꿰뚫고 있다고 자부했고, 클라이언트의 성공을 곧 나의 성공으로 생각하며 짜릿한 쾌감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공허해졌다.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항상 고객들이었고, 옆에서 거들기만 하면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무렵, 당시 나의 가장 큰 고객사였던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법무담당 부사장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나는 오랜 고민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변호사로서의 자문 역할을 넘어, 직접 투자를 집행하는 팀의 일원이 된 것이다. 로펌 파트너 시절보다 더 큰 규모의 거래들을 담당하며 3년을 보냈다. 성공 확률이 높은 딜을 선별하는 눈, 기업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결국 나는 내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인의 소개로 평택에 있는 한 중소 제조업체를 알게 되었고, 내 눈에는 그 회사가 엄청난 잠재력을 품은 보석처럼 보였다. 내가 맡아서 경영하면 그 잠재력을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그만두고 나와 그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재무제표 속 숫자와 공장의 땀 냄새는 전혀 다른 언어였다. 인수한 후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회사는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변수들에 속절없이 흔들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짜 위기는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핵심 임직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회사의 성장을 이끌던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 바로 옆에 경쟁사를 차리는가 하면, 다른 일부는 아예 기존의 핵심 거래선을 통째로 들고 다른 경쟁사로 이직해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재무적 위기가 닥쳐왔고, 그 후 6개월은 지옥과도 같았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고, 결국 내 손으로 회사의 부도를 선언해야만 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성공과 명예, 그리고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실패였다.
실패가 나에게서 가장 확실하게 앗아간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오만’이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이 두 가지가 일치하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그렇게 10년 전, 나는 다시 변호사로 돌아와 창업 초기 기업과 중견 기업을 위한 작은 부티크 로펌을 열었다. 내가 가장 '잘했던' 일로 돌아온 것이다. '오만'이 떠난 자리를 '좌절감'이 모두 채워버리기 전에 '자신감'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한 10년이었다. 다행히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과거의 나처럼 무모한 자신감에 취해 있거나 예기치 못한 위기 앞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나의 실패 경험이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고, 이런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내가 겪은 처절한 실패는 나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한 가지 큰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책상 위 서류들만으로는 결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창업자의 무게와 고뇌에 대한 겸허한 이해와 진심어린 공감이었다. 아마도 첫 만남에서 상훈이 나의 상훈에 대한 공감을 느낀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한 후 3년쯤이 지난 후에는 꽤 긴 고문기업 리스트를 갖게 되었고, 상훈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인 2025년 9월이었다. 상훈의 서명이 말라가는 계약서를 내려다보며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젊은 창업가가 나와는 다른 길을 걷기를, 그리고 그가 앞으로 겪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내 실패의 경험이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수 있기를, 조용히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