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창업가의 스타트업 이야기

4. 이 변호사 (2)

by 이응진

지인이 평택에 있는 제조업체의 매각을 의뢰하러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사모펀드 운용사의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올해가 203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9년의 일이다.


지인이 가져온 회사 소개자료를 보니, 그 회사는 한 때 연 매출이 200억 원이 넘었던 회사인데 창업주의 암 투병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정들 때문에 최근 4년 동안 매출이 급감하여 매각을 의뢰한 시점에는 연 매출이 80억원 정도였고, 연 20억 원 정도에 달했던 순이익도 이제는 1억 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은 없는 회사라서 회사 지분 100%는 모두 창업주와 그의 외아들 소유로 되어 있었다. 100% 지분 전부를 15억 원에 팔겠다는 것이 매각 제안의 내용이었다.


"이 매각 딜은 딜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저희 회사가 투자대상으로 검토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지인들 중에 혹시 관심이 있을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매도인을 한번 만나보기는 할게요. 조 박사님이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와 부탁을 하시는데 제가 그 정도는 해야죠."


나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조 박사와 함께 삼성동 P호텔 로비에서 창업주를 만나 회사의 연혁과 최근 회사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의 자금력과 경영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회사를 인수해서 경영하면 어렵지 않게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을 텐데 자신에게는 더 이상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고, 외아들은 아직 대학생이라 회사를 맡아서 경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창업주의 설명이었다. 평생을 바쳐 일궈온 회사를 이렇게 넘기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하며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다음 날, 나는 조 박사와 함께 평택으로 내려가 공장장의 안내로 본사와 공장을 둘러보았다. 공장의 입지도 좋았고 의외로 공장의 상태도 아주 깔끔해 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설비가 가동되면서 나오는 쇳소리로 가득한 공장을 둘러보면서 내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있었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 두근거림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만일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 딱 하루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이 날을 선택할 것이다.) 그날 이후, 이삼 년 열심히 해서 회사를 예전 수준으로만 회복시킨다면 이 회사의 기업가치가 쉽게 10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생각과, 나라면 충분히 그 수준 이상으로 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짙은 안개처럼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늘 철저하게 검토했던 worst case scenario 같은 것은 따져보기도 않았고, 따져보기도 싫었다. 여러가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말리는 아내의 현명한 조언도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그런 상태에서 덜컥 인수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평택을 다녀온 후 딱 2주가 되던 날, 나는 인수대금을 15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낮춘 주식매매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오랜 조력자로서의 삶을 끝내고 드디어 뭔가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현명했던 이유들을 제시하며 내 결정에 반대하던 아내는 마지못해 '그동안 잘 해왔으니 당신을 믿어볼게요. 이왕 이렇게 결정한 거니 열심히 해봐요. 나도 힘 닿는대로 도울게요...'라고 하며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그로부터 3년이 채 지나기 전에, 아내가 내 결정에 반대하면서 정확하게 지적했지만 내가 애써 외면했던 많은 'what if...'들이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고, 나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는 회사의 적자를 더이상 감당하지 못해 2022년 5월 회사의 기업회생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 당시에는 이미 회사의 부채가 80억 원을 넘어선 상태였다. 회생절차를 통해 공장을 처분하여 받은 대금 55억원으로 공장을 담보로 한 금융기관 채무 40억 원을 변제하고, 남은 15억원으로는 상거래채무를 일부 감액조정을 거친 후 전액 변제했다.


남은 채무 25억은 내가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서 보증인으로 되어 있던 채무였다. 다행히 나를 믿어준 한 은행의 지점장이 이 채권들을 바로 실행하지 않고 보증채무를 내 개인 명의의 정상 대출로 전환시켜 주었다. 이 지점장은, 회사 어음이 부도처리되기 전 날 회사에 대해 채권을 갖고 있던 은행들과 거래처들 모두 찾아가, '회사를 잘 운영하지 못하여 죄송하다, 내일 어음이 부도처리될 것이니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미리 취하시라, 채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내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25억 원의 개인 채무를 안은 채로 2022년 11월에 다시 변호사 업계로 돌아왔고 상훈을 처음으로 만난 2025년 10월까지도 이 채무는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회사에 근무하면서 창업 준비를 하는 것은 내키질 않았습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숨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그동안 나를 믿어준 회사를 배신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나가서 준비를 시작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상훈을 처음 만났던 날, 상훈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다. 국내 굴지의 의류업체에서 십수년을 근무해 영업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게다가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아내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까지 두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창업을 하다니... 그것도 창업에 필요한 자금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솔직히 말하면, 상훈의 모습에 정확히 13년 전의 내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사실, 상훈은 영민의 시드(Seed) 투자가 없었다면 창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상훈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5억 원이었는데, 상훈이 창업자금으로 준비해 둔 돈은 2억 원 남짓이어서 적어도 3억 원의 투자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상훈의 오랜 지인이자 상훈에게 매직 글러브 한국 총판 창업을 강력하게 권유한 장본인인 마에다(前田) 사장이 상훈보다 3년 앞서 일본에서 창업한 Magic Glove Japan이 창업 2년 차에 3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고 3년 차에는 월매출이 거의 7억 원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훈은 이 점을 근거로 영민에게 투자를 권유했고, 거의 한달 정도의 집요한 설득과 치열한 투자 협상을 거쳐 영민으로부터 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상훈의 창업과 영민과의 투자 협상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은 제 책 '창업1년차 김사장은 어떻게 투자유치에 성공했을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첫 투자 유치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의 회사 '매직 글러브 코리아(Magic Glove Korea)'는 스웨덴의 명품 작업용 장갑, '매직 글러브(Magic Glove)'의 한국 독점 수입 판매권을 기반으로 설립된 회사다. 영민에게 투자를 받으며 제시했던 상훈의 사업계획대로라면 투자금 입금 6개월 뒤에는 월 매출 1억 원을 달성해야 했다. 하지만 투자금이 입금된 후 8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의미 있는 기업 고객은 투자자 영민이 소개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가 유일했다.


"김 대표님, 저희가 함께 검토했던 MGK 사업계획서상 매출 목표는 6개월 차에 월 1억 원이었습니다. 지금 8개월 차인데, 지난 달 매출이 아직 2천만 원이 안됩니다. 심지어 이 매출도 대부분 제가 소개해드린 회사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매주 월요일 아침 창업자 상훈과 투자자 영민, 그리고 내가 화상으로 참석하는 주간 회의의 분위기는 영민의 정중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만큼이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단순한 엔젤 투자자가 아니었다. 상훈의 자본금 2억 원보다 많은 3억 원을 베팅한 승부사였고, 회사의 매출과 자금 현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깐깐한 ‘시어머니형’ 투자자였다.


"영민님, 현장은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막상 제품을 들고 기업 고객을 만나보니, 기존에 쓰던 저가 제품도 쓸만한데 굳이 2배나 비싼 스웨덴 장갑을 써야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아직까지 소수 매니아층을 제외하면 매직 글러브의 한국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는 전무하고, 영업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구요..."


상훈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까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초기 자금 5억 원. 투자유치에 성공할 때까지만 해도 상훈에게는 그 돈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5년간의 독점수입권의 댓가로 MGK가 스웨덴 매직 글러브 본사에 지급한 금액이 5만 유로였고, 거기에 더하여 초도 물량 수입 대금으로도 1억 원이 넘는 뭉칫돈이 지출되면서 초기 자금 5억원은 순식간에 삼분의 일 가량이 소진되었다. 사무실 임대료, 그리고 영업팀 직원 3명과 경리사원 1명의 인건비, 영업과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 즉 '번레이트(Burn Rate)'는 3천만 원에 육박했다. 대표인 상훈 자신은 월급은커녕 개인 돈을 더 태워 넣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 그렇게 8개월이 흘러 MGK 법인 계좌에 남은 돈은 1억 5천만 원 남짓이었다. 자금 소진까지 남은 시간, 회사의 '런웨이(Runway)'는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어도 5개월 안에 유의미한 매출을 만들어내거나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는 심각한 재무적 위기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벤처업계의 선배들이 말하는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투자자 영민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상훈님, 이게 바로 '데스밸리'입니다. 스타트업은 여기서 살아남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영업 인력을 최소화하고, 효과가 확실치 않은 영업과 마케팅 비용도 최소화해서 런웨이를 최소 3개월 이상 더 확보해야 합니다. 상훈님이 제일 잘 하시는 게 영업 아닙니까? 직접 뛰셔야죠. 생존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상훈은 고개를 저었다.


"영민님, 그건 천천히 죽는 길입니다. 지금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됩니다. 그동안 우리 영업팀 직원들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얼만데요... 제품 교육과 트레이닝이 끝나고 의미 있는 영업이 시작된 것은 불과 2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 영업팀 3명은 다 핵심 인력이고, 이들이 없으면 MGK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연히 창업 첫 날부터, 아니 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영업 일선에서 직접 뛰고 있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영업을 오래 해온 제 감으로는 앞으로 한 두 달 안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영민님."


상훈의 전화에서 강한 진동음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두달 전에 초도 물량을 납품했던 회사의 공장장이네요. 죄송하지만 잠시..."


전화를 받고 들어온 상훈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지난 번 납품했던 제품 일부에서 하자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전량 반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시죠."


상훈의 얼굴이 사라진 화면이 암전되자 영민과 나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화상 회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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