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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Sep 12. 2020

1.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날

너의 인생이 비참하다면, 고개를 들어 나를 봐라

스무여섯이 되던 해, 나는 취업 준비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이미 취준을 한 지 2년이 넘었고, 대기업 최종면접 결과를 앞두고 있다 보니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만큼 고생을 했으니 이제 드디어 나에게도 꽃 길만 걸을 날이 오겠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최종이었던 만큼 거의 모든 상반기 구직활동 발표의 마지막 주자였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하늘이 푸른 어느 날, 갑자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날은 무척 따뜻하고 꽃도 예쁘게 피어서 산책을 하려던 참에, 갑자기 기대하던 회사로부터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좋아하던 사람과 사귀고 있었다. 스무 살 여름방학에 대만으로 국제 봉사활동을 가서 처음 만난 뒤 돌고 돌아 5년 만에 어렵게 다시 만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애가 닳던 사랑이었다. 먼 타국에 사는 사람이고 모국어와 배경 문화도 달랐지만 그가 너무 좋았다. 나와 그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오 년 전에 만나 그를 마음에 두었지만 어쩌지 못한 채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 시작한 연애라니. 내 연애가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게 사귄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때, 나는 취준이 잘 풀리지 않아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또 위로받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진심인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고 나조차도 너무 좋았다. 그 옆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런 마음이 처음이라 더욱더 설레고 소중했다.


"네가 없는 내 삶은 상상도 안돼"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의지하는 건 위험하다고 아무리 이성이 경고를 해도, 나는 진심으로 저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의지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를 받았던 날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 그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헤어지자”




세상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내가 넘어졌는데 거기다 칼을 꽂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면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뭐라고? 이게 기다린 거였다고? 나한테서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진심이니? 5년을 돌고 돌아 나한테는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사랑이었는데 너는 겨우 얼마나 됐다고 내가 하나도 안 설레? 하나도 안 설레???


좌절감, 배신감, 현실 부정, 인간의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가장 기대했던 회사, 가장 많이 기대고 있던 애인이 모두 하루아침에 내게 잔인하게 등을 돌렸다. 그 두 사건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내 상태가 온전치 못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야말로 무너져 내렸다.



이별을 통보받고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너의 인생이 비참하고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고개를 들어 나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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