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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Feb 15. 2023

이제, 너는

동생의 죽음

        

                

은영이가 죽었을 때, 나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얼굴도 좀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푹 쉬었다 가라는 J의 말에, 토요일 아침마다 가는 그림공방 수업도 빼먹고 아침부터 고양시에 갔다. J의 동거인이자 먼 친척인 H씨가 완도에서 사온 큼지막한 전복으로 J가 근사한 해물찜을 만들었다. 정오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먼저 화이트 화인을 한 병 해치우고 맥주를 마셨다. 맥주 캔이 수북이 쌓여가는 걸 보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H씨가 눈 좀 붙이라고 했고 나는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 J가 침실에서 이불을 가지고 와서 덮어주며 말했다.

“언니, 좀 주무세요.”



나른하고도 편안했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막 잠 속으로 빠져들려는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남동생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 이따 통화하자.”

“큰누나, 그게 아니라……작은누나가 죽은 거 같아.”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죽은 거 같다니?”

“아빠가 전화하셔서 내려왔는데 작은누나가 숨을 안 쉬어.”

 

사실 은영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2년 전에 악성림프종 4기 판정을 받은 은영이는 여섯 번인가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완치했는데 최근에 다시 상태가 나빠졌고 추석 무렵부터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한다고 했다.

 

어떡하지? 전화를 끊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J가 집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119에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H씨는 학교에 알리라고 했다.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말씀드리니 “아이고, 동생이면 나이도 얼마 안 될텐데.”하시며 사용 가능한 휴가 일수를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중요한 일정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월요일 오후에는 내가 분과장을 맡은 단체의 연말결산 회의가 있어서 출장 상신을 했고, 화요일에는 학부모 독서동아리 대상의 작가초청 강연이 있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일정을 조정한다고 해도 나를 탓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냥 월요일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도 알렸다. 내가 대뜸 놀라지 말고 들으라며 말을 시작하자, 아들은 송이가 죽은 건가 생각했다고 한다.


은영이는 해금을 전공했는데 전문대를 졸업하고는 집을 나와서 내내 떠돌며 살았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신림동 단칸방을 전전했고 본인이 내키면 잠깐 다니러 온 것처럼 우리집에 와서 한 달 가까이 머물다 가곤 했다. 그때마다 은영이는 두서없이 내가 모르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하거나 연예인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예뻤던 은영이는 빠르게 늙어갔지만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서도 아줌마라고 불리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은영이가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에 아빠가 서울에 오셔서 밀린 월세를 해결해주고 전주로 데리고 가셨다. 은영이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짐들을 우체국에서 산 박스에 넣어 아빠 집으로 부쳤는데 택배비만 3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은영이는 아빠의 24평 아파트의 방 두 개를 짐으로 가득 채우고는 치우지도 않고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80이 넘은 아빠에 대한 죄송함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다 통화하면 아빠를 흉보거나 탓했다.

휴대폰이 잠겨 있어서 은영이의 지인들에게 알리지 못했다며 아빠는 안타까워하셨지만, 부고를 들어도 올 사람이 거의 없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입관실에서 거의 반 년만에 은영이를 만났다. 수의를 입은 은영이는 볼이 움푹 패어 있었다. 그렇게도 숱 많고 까맣던 속눈썹은 듬성듬성했고 눈꺼풀은 푹 꺼져 있었다. 아빠와 남동생이 꺽꺽 울었다. 분명 슬프고 불쌍한데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월요일, 은영이의 발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학생들에게 “안녕?”하고 인사했고, 오후의 출장을 위해 회의 자료를 출력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배가 고팠다. 급식소에 가서 줄을 서고 식판에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돈가스가 나왔다고, 우리 학교 돈가스 맛있다고 얘기하다가 기억나버렸다. 내가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면 은영이가 ‘나도 이거 먹을 줄 아는데’라고 댓글을 남기던 게. 말은 안 했지만 그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너는 이제 아무것도 못 먹는구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콧물도 함께.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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