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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H Jul 10. 2019

보람된 하루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

[두 번째 편지] 사소한 것에도 보람을 느끼기를


언니... 보람된 하루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


필자는 굉장히 힘든 하루였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반대로 얘기하는 버릇(?)이 있다. 


"크~ 기분 좋~다!"

"아- 오늘은 정말 보람된 하루였어"

"오늘 너무 행복하다...!"


필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분 좋은 일 있었나 보네!'라며 함께 즐거워해 주는데 눈치 빠른 동생은 그런 필자를 바로 캐치하고 무슨 일 있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동생은 나에게 역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보람된 하루가 어떤 하루인 건데? 난 보람된 하루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


그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가끔 그렇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동생이기에 얼버무리며 답을 미룬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러분이라면 보람된 하루가 어떤 하루라고 정의를 하겠는가? 필자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동생에게 해 줄 순 없지만 내 경험을 토대로 얘기를 한 번 해보려 한다. (정말 단순히 내 경험...!!)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단기 근로를 했었다. 사생들이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는데 필자가 1층부터 5층까지 왔다 갔다 하며 사생들이 퇴사할 때마다 일일이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바꿔주는 작업을 하거나 입사한 사생들이 방 문이 안 열린다고 하면 마스터키를 가지고 올라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필자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쓰고 있던 호관에서 다른 호관으로 방을 옮겨야 하는 날이었다. 근로를 하는 중간에 근로 샘에게 양해를 구해 필자 방 짐을 다른 호관 방으로 옮기는 데 '욕' 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필자가 그 날만은 속으로 정말 많은 욕을 내뱉은 것 같다. (편집이 가능한 방송이었다면 삐- 처리가 여러 번 될 정도로)


원래 쓰던 방이 3층이었는데 호관이 바뀌면서 4층이 되었고 엘리베이터도 없던 기숙사였기에 내 짐 하나하나를 계단으로 올려 보내야 했다. 날씨도 꽤 더웠던지라 평소 땀이 별로 없던 필자지만 그날만큼은 바지 안쪽까지 땀으로 젖을 정도로 굉장히 고생을 했다. 


그리고 짐을 다 옮기고 근로도 다 마친 후 내 방에 들어왔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꽉 끼던 청바지가 헐렁해진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버지의 바지를 입을 것처럼...(진심이다)

'사생들 문 열어주느라 계단 1층에서 5층까지 왔다 갔다 했고, 힘이란 힘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다 써서 살이 빠진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혼자 기뻐했다(?) 일단 살은 빠졌으니까...!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정말 오랜만에 보람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미드를 보고 스피치 강의를 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노동(?)을 하고는 하루를 참 제대로 잘 살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오늘은 잠이 잘 오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물론 누군가는 필자와 다르게 책상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책상에 앉는 순간... 시간 가는 것을 매우 잘 안다...! 몇 분이 지났는지 슬쩍 휴대폰으로 확인만 해보자라고 생각하다 누구에게 연락이 왔는지 문자함을 열고 오늘은 어떤 맛집 정보들이 올라왔는지 SNS 앱을 실행한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안에 앉아서 한글이나 엑셀을 만질 때보다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을 했을 때 더 뿌듯하다. 사실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일을 딱 마치고 홀가분 한 순간

오늘은 왠지 가뿐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날 

괜히 오늘 하루를 누군가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날

.

.

.

그런 날이 바로 행복하고 보람된 날이 아닐까. 


그리고 내 동생인 너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나는 일을 마치고 너랑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 별것 아닌 것에 깔깔거리며 웃은 그날도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도와준 건 없지만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기뻐하는 너를 보면서도 보람을 느끼고. 

그러니 너도 사소한 것에 '보람'을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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