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불호를 말할 수 있는 용기
학창 시절, 대부분이 A가 좋다고 말하면 나는 B가 좋아도 말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가끔 다른 취향을 당당히 고백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친구를 동경했다가, 가슴 깊이 시기하기까지 했다면 조금 못나 보이는가?
나는 종종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잘 몰랐다. 내가 얼마나 그에게 맞추어 주었는지. 나는 한계치까지 맞추려 들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거리를 두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의사를 말하지 않고 멀어지는 편을 택했다.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그들 중 몇몇은 황당했을 것이다.
여기서 맹점은 나 또한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하여 최대한 맞추는 것은 ‘내가 해야지!’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되곤 한다. 어느 순간 내가 터져 ‘그동안 힘들었어, 못하겠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누가 그렇게 하래?
난감했다. 그 말이 사실이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내가 맞추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의 삶이 더 불행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이다음 순간은 꼭 자책하게 되었다. 그냥, 좀 더 참았으면 아름답게 끝날 수 있었을까.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이루었다고 사람이 달라지진 않는다. 옛말에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상대와 멀어지는 방법을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남편과 아이가 내 곁에 찰싹 붙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간의 침묵과 눈물, 삐짐과 잔소리 등으로 남편에게는 내 호/불호가 조금은 전달된 것 같다는 점이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당당히 내비치는 것이 어렵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이 편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일종의 ‘안전 지대’이니까. 취향을 조금 고백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