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1. '그것이 알고 싶다.'

오랜 집착의 그 시작

by 은호씨

엄마는 박상원 아저씨를 좋아했다. 뭉툭한 콧날이 아빠를 닮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늦은 밤 그가 진행하는 다소 무서운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나는 엄마를 몰래 훔쳐보며, 그 프로그램을 접했다. 으스스한 분위기, 뭔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느낌. 나는 그렇게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를 처음 기억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알’을 의식적으로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어렴풋이 난 역대 MC를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 문성근의 ‘그알’을 제일 좋아했다. 그의 까랑한 목소리는 좀 더 사회 고발적(?)인 느낌이 들었다. 정진영도 좋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장기근속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알’을 지키고 있는 김상중을 빼놓으면 안 되겠지.


10대에는 뭔가 보면 안 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비밀스럽게 시청했다. 그러다 점점 습관이 되었다. 20대, 다소 음주가무를 즐기던 그때에도 토요일 밤 11시 20분만큼은 사수했다. 본방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를 마치고도 헐레벌떡 집 문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시작했어?


그 시각 텔레비전 앞에는 동생들이 모여있었다. 우리는 성격이나 생김새, 그 어떤 것도 비슷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같았다. 나는 결혼 후, 그 어떤 것보다 동생들과 ‘그알’을 함께 보는 시간을 잃은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우리는 종종 단톡방에서 그날의 시청 소감을 나누거나, 레전드 편을 꼽곤 했다. 우리 사이에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레전드 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1016회 「살인범의 걸음걸이」 편이다.


그렇다고 ‘그알’의 모든 것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떤 특정한 정치색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프로그램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나쁜 짓은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어떻게 보면 보면 참 당연한 말이지만, ‘그알’을 보고 있자면 그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세상엔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나쁜 짓을 하고도 정당한 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 그 어두운 이면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본다는 건 사실 괴로운 일이었다. 남편은 겁도 많고 불안도 높은 주제에, 매주 ‘그알’을 챙겨보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알 좀 그만 봐!’ 남편은 항상 불만이었다. 나 또한 어느 순간 프로그램 속의 피해자들에게서 야릇한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 잠깐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단순히 이렇게만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에너지가 적어 쉽게 지치는 나로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들이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넌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어?!’ 이것은 나에게 하는 ‘채찍질’에 가까웠다. 게다가 나는 믿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를 기억한다는 것은 미약하게나마 힘이 있다고.


아예 습관이 되어 버린 지금도 토요일 해당 프로그램을 놓치고 나면, 일요일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라도 그 주의 에피소드를 듣곤 한다.(화면은 보지 못할 때도 많다.) 아직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얼마 전 너무 정신이 없어 토요일 ‘그알’을 놓쳤는지도 잊고 나서, 나는 너무 놀랐다.

여보, 내가 그알을 놓치고도 기억을 못 했어!


이제는 ‘그알’을 보는 행위가 거의 집착에 가까워졌음을 인정해야겠다. ‘그알’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고, 동생들과의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조금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지만, 역시나 불호보다는 호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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