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호1. 쫓기는 느낌

시간뿐만 아니라 책임, 그리고 삶까지

by 은호씨

나는 초등 6년, 중고등 6년 총 12년을 개근했다. 우리 때는 흔한 일이었다. 언젠가 막 끓인 라면을 발등에 부어 심각한 화상을 입었을 적엔 아빠가 나를 업고 교실 의자까지 데려다주셨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열이 나도 학교에 가서 아프라며, 나를 채근했다. 나는 그렇게 학교는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자랐다.


그 때문일까. 나는 시간 약속도 잘 지키는 편이었다. 늦어서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그 상황이 싫었다. 상대방이 늦는 건 괜찮았다.(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종종 사람들은 5분이나 10분씩 늦었다. 매번 늦는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10분 일찍 도착하게 시간을 맞춰 간다. 기다리면 되니까. 내 가방엔 작은 책이나 다이어리가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이런 성향이 탈을 일으킨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꼭 지켜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 나에게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무슨 일을 하건 잘 해내고 싶었다. 출근 시간보다 항상 일찍 도착했고, 일을 하다 보면 결국은 야근이 되었다. 팀의 막내는 계속 야근을 해도 눈치가 보였다. 왜 그 팀은 막내만 야근을 하냐며, 팀장님이 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나는 집으로 일을 싸가야 했다.


아이를 낳고 일하는 지금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정이 있어 일을 집까지 가져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강제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그게 가능했다. 그리고 사실 일의 용량도 많이 줄였다. 나는 내 깜냥을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만을 찾는 것으로 이 ‘쫓기는 느낌’을 피해왔다.


사실 모든 법을 지키려고 들고, 규칙을 어기려 하지 않는 내가 가끔은 답답하다. 이런 나의 성향이 ‘쫓기는 느낌’을 유발하고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와 정반대의 성향인 우리 남편은 항상 느긋하다. 무슨 일이든 한 번에 결정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차분하게 해결 방법을 찾으려 든다.


시간 강박이 있는 데다 성미까지 급한 나는, 딱 준비하여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멘붕이 되는 편이다. 내가 정신이 반쯤 나가 있을 땐, 남편이 출동한다. 이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문제해결력은 꼭 필요하다. 이런 면은 우리 아이가 많이 닮았으면 한다.


반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싫다. 남편의 주변인 사이에는 ‘OO(남편 이름) 시간’이라는 말이 다 있더라. 남편에겐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알려주라는 분들도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인데 그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불호다.


나는 뚜벅이라 아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친구들은 힘들면 남편에게 태워달라고 하라고들 한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가 몸은 편하게 차를 타고 이동할지언정, 속은 타들어 간다. 뭘 한다고 꼭 꾸물거리다 출발하여 1-2분 늦게 도착한다. 예약 시간이라는 게 있는데, 늦어서 아쉬운 소리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미리 준비하여 아이랑 데이트하듯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낫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에 계속 쫓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고 한들, 어차피 살아가며 부딪혀야 하는 것이라면 적응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다. 이 ‘쫓기는 느낌’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 나 같이 답답한 사람도 있으니, 다른 분들은 편히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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