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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와콜라 Nov 23. 2019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 TOP3 (3)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rion de los Condes, 종이 별

-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보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걸으셔도 좋을  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보   하나니까 역사적 의미도 있고요, 역사가 깊은 만큼 순례자를 위한 인프라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순례자의 10% 종교적인 이유 없이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 종교적인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신다면, 카리온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수녀님들이 종이 별을 만들어 나눠주시는데요,  별이 주는 여운이 오래갑니다. 카리온 수녀원 알베르게에서 수녀님들의 규율에 따라 생활해보는 것도, 순례길에서 해볼  있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  글에서는, 카리온 성당의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서 생긴 일을 위주로 써볼까 합니다.





1.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 – 종교적인 목적 90.65%         


(Informe estadístico, Año 2018, Oficina del Peregrino 참조)

     


    지난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은 총 327,378명입니다. 그중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걷는 사람이 140,037명(42.78%), 다른 이유와 더불어 종교적인 이유도 가지고 걷는 사람이 156,720명(47.87%)입니다. 전체의 90.65%가 종교적인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순례길을 걷다, 유대교인 두 분을 만나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이 유대교인라고 밝히자, 식사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기독 문화가 짙게 깔린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분들은 도보 여행 겸 걷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 중 10%는 이 분들처럼 도보 여행, 문화 체험 또는 스포츠를 목적으로 걷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들이 도보로 이동하던 길이며 여전히 한 해 30만 명이 걷는 길이기에, 숙소 및 도보 여행자에 대한 인식이 훌륭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종교성을 강조하고 순결한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므로, 다소 갈등의 여지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교적인 성지로 여기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 적어도 종교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간다면, 종교적인 이유가 없더라도 이 길을 세계에서 잘 구비된 도보 여행지로 여기고 순례길을 걷는 것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자체는 성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정이자 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순례자들을 보살펴 온 성지이기에, 종교적인 목적이 있다면 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이하 ‘카리온’)’ 역시 아름다운 성당과 종교적인 분위기가 짙은 곳입니다.






2. 카리온 성당 수녀님이 만드신 ‘종이 별’     



  카리온은 ‘노래 부르는 수녀님들’이 계시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카리온에 두 개의 공립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중 한 알베르게에서는 수녀님들이 매일 오후 5시경 순례자들을 모아 두고 함께 찬양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저희는 다른 수녀원에 묵어, 그 시간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전해 듣기로는 초고음질 무손실(FLAC) CD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고, 너무 맑고 고운 음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순례자 여권. 방문한 곳의 도장을 받아 추후 완주 증명한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새까맣게 탄 손, 그리고 귀여운 종이 별 ★     



    제가 감명 깊었던 것은, 순례자를 위한 저녁 미사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천주교 교인이 아닌 데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였기에, 미사 시간에 혹시 실례할까 싶어, 미리 네이버에 ‘미사 드리는 법’을 검색하고 갔습니다. 그래도 영 어설펐지만요. 미사에는 일어나고 앉는 시간도 있더라고요. 눈치껏 일어났습니다. 신부님이 쎄뇨르 뭐라고 뭐라고 하고 아멘, 하실 때는 저도 아멘, 따라 했습니다. 여행 내내 영어보다 더 저를 먹여 살렸던 '눈치'로 미사를 무사히 드렸습니다. 곧이어 마을 주민 분들은 밖으로 나가시고, 신부님이 순례자들 los peregrionos을 강대상 앞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부드럽게 주름진 얼굴이 그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하게 했으며, 수녀님은 제가 본 그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습니다.

    


    신부님이 30명 남짓한 순례자들의 국적을 물으셨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미국,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한국, 브라질, 호주, 캐나다, 말레이시아, 조지아, 대만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보다 국적이 다양해서, 나중에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전 세계 177개국에서 온다고 합니다. 전 세계의 나라는 UN 기준 195개 국, 올림픽 기준 206개국, 월드컵 기준 211개국이라고 하니, 순례길에서는 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뒤이어 수녀님이 단상에 올라오셨습니다. 영어로 말씀하셨는데, 미사가 끝난 후 기억나는 대로 메모장에 옮겨 적은 내용은 이렇습니다.                 


Walkers need a light, especially in night time.
걷는 사람들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특히 어두운 밤에는 더욱이요.

Even though you don’t see it, there is a star staring at you.
여러분이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하늘에는 항상 여러분을 주시하는 별이 있습니다.

He is the light.
그는 빛이십니다.

And you are the light. He calls you so.
그리고 여러분도 빛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그렇게 부르십니다.

The world needs your light.
세상은 여러분의 빛을 필요로 합니다.

With this paper star, remember the one who deals with you.
이 종이 별을 가지고, 항상 기억하세요. 여러분을 관심 있게 대하고 있는 한 분이 있다는 사실을요.



    수녀님이 직접 만드신 종이별을 건네시며 축복 기도 해주시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생면부지의 남에게 막힐 것 없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을 만나서 놀란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마음 따뜻해지면 갑자기 눈물 나더라고요(TV에서 감동적인 장면 나올라치면 이미 눈물 주르륵… 남편은 감동적인 이야기 나오면 TV 안 보고 제 얼굴 봅니다, 우는 거 놀리려고요. 흑).     



    어쩌면 제 마음이 너무 꽁꽁 얼어 있었나 봅니다. 따뜻한 축복의 말에 금방 눈물이 나는 걸 보면요. 저는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원래도 감정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강화되었습니다. 업무에 도움이 되니까요. 의뢰인이 제게 하는 말 중 주장과 사실을 분리하고, 상대방이 제시하는 주장과 증거에서 모순점을 찾고 논박하면서, 누구를 만나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습니다. 순례길 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조건적인 호의는 없다’고 단정 짓고, 적당히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알기 전까지는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불신 사회가 신뢰 사회를, 신뢰 사회가 불신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이에도 상대방을 믿을만한 이유가 없을 때는 불신을 전제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상대방의 보조 텍스트를 의심해보는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맞닥뜨리는 무한한 신뢰, 무한한 애정, 아이 같은 마음은, 제 머릿속에 있는 모든 명제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다소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전하며 사는 것’, 모두 진짜로 가능할 것만 같은 거죠.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시킨다는 게 이런 걸까요.


           




3. 결론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인 목적이 아니라도 걷기에 매우 좋은 길입니다. 길이 얼마나 아름답게요.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얼마나 귀하게요. 종교적인 목적으로 걸으신다면, 그에 더하여 성당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카리온 성당에서처럼요. 때로는 짧은 만남이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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