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문제"라는 폭력에 대처하는 법
브런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아픈 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인의 악의 없는 맹함,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단순함, 서툰 위로로 상처를 받는 글을 종종 읽게 된다.
암에 걸렸다. 장기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런 큰 아픔 말고도 감기 걸렸다. 위가 쓰리다.라는 말에도 '병원은 다녀왔니. 약은 먹었니. 약 먹으려면 밥 먹어야 하는데 죽 먹을래? 약 먹고 푹 쉬어라.'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유독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 그건 의지의 문제다. 걸어라. 뛰어라. 햇빛 봐라. 산에 다니는 게 좋더라.'라고 자신이 위로라고 생각하는 해결책을 쏟아낸다.
육체의 병은 '병원 다녀왔니. 약은 먹었니. 밥은 먹었니. 푹 쉬어라.'라고 그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면서, 마음의 병에는 '걸어라. 뛰어라. 햇빛 봐라.' 하면서 온통 아픈 사람 의지에 포커스를 맞춘 해결책만 제시한단 말인가? 물론 그런 행동들이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병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한 얘기다.
마음이 아픈 건 호르몬의 문제다. 오랫 만에 만난 지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맹수 두 마리 키워요
맹수요??
네, 말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물어뜯으려고 해서 저건 맹수 두 마리다 생각하고 살아요.
그 맹수는 사춘기 아들 두 명이다.
사춘기 호르몬에 미쳐 날뛰는 아이가 걸으면, 뛰면, 산에 가면, 의지로 사춘기 호르몬이 잠재워진다고 생각하나? 그 시절이 지나서 호르몬이 안정되어야 스스로도 '내가 그때 미쳤었나 왜 그랬지.' 하고 생각한다.
갱년기도 마찬가지, 호르몬 때문에 얼굴에 열이 오르고 땀으로 이불을 흠뻑 적시고 동지섣달에 선풍기 틀고 하는 증상을 걷고, 뛰고, 산에 가고 의지로 해결한다고? 병원에 가서 호르몬 치료해야 낫는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 플러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한번 더 고통을 받는다. 내부 장기가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을 그 사람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피부질환이 심한 사람은 스스로도 위축되지만 타인의 시선에 한 번 더 위축된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은 그 고통을 기억한다. 군필자들도 훈련과 행군의 고통을 기억한다. 그러나 내가 격은 고통임에도 그것이 현존하는 것이냐 지나간 것이냐에 따라 느낌은 또 다르다.
이러한데 하물며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고통을 어찌 이해할까. 타인의 고통을 잘 모르겠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주고, 눈 맞춰주고, 안아주고, 좀 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깊이가 있다면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면 된다. 제발 영혼 없는 말로 영혼이 아픈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마라.
상대가 먼저 상처를 줘서 너무 화가 나고 아플 때는 참지 말고 상대의 아픈 곳을 떠올려 봐라. 누구는 비염, 누구는 위염, 아픈 곳 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 강하게 먹으면 다 나아. 그건 의지의 문제야. 걷고, 뛰고, 산에도 가고 말이야.
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봐라.
내 우울이 의지로 낫는 거면 네 비염은 벌써 완치 됐겠다.
그거랑 그거랑 같니?
뭐가 다르니? 어차피 서로 아픈 거 이해 못 하기는 마찬가지지. 너의 논리대로라면 네 비염은 산행 한 번이면 다 나았겠는걸?
이렇게 냅다 질러 버려라. 거울요법으로, 그런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똑같이 느껴 보도록,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는 그냥 누워 있어도 된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며 이겨내고 있는 것이고 당신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이상 또 뭘 해야 할까?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나를 괴롭힐 사람은 차고 넘친다. 자신을 좀 더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 봐 주기를 바란다.
브런치에 아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문장으로 소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픈 걸 아니까 남의 아픔도 보이고, 그것을 글로 쓰면서 성찰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의 입이 아니라 손과 발을 보라 하였다. 공허하게 말로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 맞춤, 따뜻한 손, 그의 손과 발이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말로 만리장성을 쌓는 공염불 같은 소음을 내는 사람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저 사람이 내가 상처 입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입만 살아 있는 가짜인지. 당신은 가짜 인간에게 상처받기에는 소중한 사람이다. 그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사람의 말만 경청하시라.
오늘 아침 눈을 떠 그래도 한 발 앞서 나가려는 당신 혹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당신 혹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있는 당신,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 어제를 넘어 오늘에 이른 당신을 존경하며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내 마음이 아픈 게 의지 부족이라고요? 그럼 당신 비염도 의지로 고쳐보시죠."
무심코 던진 '의지 드립'이라는 폭력에 대처하는 법. 나를 아프게 하는 '가짜 위로'를 구분하고 나를 지키는 법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