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破卵) 한판 안 깨진 계란 한 판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계절, 아이는 바구니를 들고 엄마의 심부름을 간다. 아이 걸음으로 10분 남짓 잘 닦여진 신작로를 따라 걸으며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초록색 아카시아 잎을 따서 바구니 바닥을 푹신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이의 오늘 심부름은 양계장에서 계란을 사 오는 일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초록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아카시아 길을 걷는 것은 아이에게는 소풍을 가는 길이다.
양계장 입구 녹슨 철문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따뜻했던 공기가 훅 뜨거워짐을 느낀다. 철문에서 주인아저씨가 분류 작업을 하는 곳까지의 길은 신작로와 사뭇 다르다.
몇몇의 트럭과 계란을 사러 오는 사람들만이 다니는 그 길은 고르지 않은 돌과 지나간 흔적이 없는 가운데로 풀이 자라 있다.
주인아저씨의 작업장은 닭들의 비명인지 아이의 귀에도 꽤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가 들리는 곳 바로 앞이다.
"파란 하나랑 안 깨진 계란 한 판 주세요."
아저씨는 바구니 안의 아카시아 잎을 일부 걷어내고 안 깨진 계란을 밑에 깔고, 걷어냈던 아카시아 잎을 다시 깔고 그 위에 파란 한판을 담는다. 아이는 정상계란 1000원, 파란 500원 이렇게 1500원을 지불하고 양계장을 나선다.
아이가 소풍길에서 꽤 무거운 계란 두 판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곤로 위에 무쇠팬을 올리고 집에서 짠 들기름에 파란을 부친다. 파란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빨리 먹어 없애야 한다.
아버지는 안 깨진 계란의 윗분분을 톡 깨서 들기름과 소금을 쳐서 드시고,
저녁이 되면 스덴 그릇에 계란과 새우젓을 휘저어 가마솥 밥이 뜸 들기 시작할 때 쌀밥 위에 살짝 올려놓는다.
뜸이 드는 동안 계란은 뜨거운 압력을 견디며 젤리처럼 단단하고 탱글 해진다. 꺼낼 때 그릇 바닥에 붙어있던 하얀 밥풀들은 계란찜이 밥의 온기로 완성되었다는 증거였다.
수저로 계란찜을 한 술 뜨면, 바닥에 닿았던 부분은 신기하게도 연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어린 눈에는 그 저 신기했지만, 그것은 가마솥 안에서 은근하게 오래 머물렀던 흔적이었고, 양계장에서 갓 나온 계란만이 보여주는 신선함이었다. 그 시절 우리 집 밥상엔 계란 후라이도 있었고, 뜨거운 압력을 견뎌낸 탱클 한 계란찜도 있었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신작로처럼 평탄하기도, 때로는 양계장 앞길처럼 척박하기도, 때로는 계란의 변주처럼 다양한 삶의 맛을 가진 듯도 하다. 어쩌면 삶이란, 아카시아 잎을 깔고 계란 두 판을 조심스레 들고 오던 그 소풍 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란(破卵), 깨졌으나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는 존재들, 우리 삶도 저마다의 파란(破卵) 한 판씩을 품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