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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네 Dec 27. 2021

국가는 한번 얻은 힘은 잘 내려놓지 않는다.

팬데믹 시대와 시민의 자유


정치학도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권력의 특징 중의 하나다. 권력은 팽창하려고 한다. 한번 힘을 얻으면 그것을 선뜻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권력은 특정한 사람이나 정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것의 성격이 그렇다는 뜻이다. (홉스는 이것을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그래서 삼권분립 어쩌고, 견제와 균형 어쩌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 쉽게 말하면 정부부처나 경찰 등의 조직이 --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힘을 얻었다. 위기상황인 만큼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많은 경우에 정당화되었다. 팬데믹 초기에는 나도 이런 방침에 동의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유라는 것, 조금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데 효과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제한하는 쪽도 제한받는 쪽에게도 말이다.


나는 자유라는 것은 꼭 보수주의자들의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자유라는 말이 빨간색 옷을 입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진보 측은 자유보다 평등에 더 우선순위를 두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자유'라는 말이 너무 정치화(politicize)되어서, 그 가치를 생각해보고 지켜야 나가야 할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너무 듣기 거북한 단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매우 조심스럽고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을 준 이들이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기 몇 개월 전, 서울에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팬데믹과는 상관없는 사뭇 다른 주제의 안내방송을 들었다. 정확한 멘트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요점은 이랬다. "지하철 내에서 공공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면 몇 조 몇 항에 따라 처벌받는다." 질서를 해치는 행위는 꽤나 조목조목 나열되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안내방송 치고는 꽤 길고 센 경고 멘트였다.


나도 승객의 한 사람으로서 지하철이 조용하고, 깨끗하고, 안전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라도 그렇게 협박 비슷한 안내방송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뭔가 이상하게 불쾌했다. 내가 그 몇 조 몇 항을 어겨가며 질서를 해칠 사람이 아닐뿐더러 나를 겨냥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공공질서를 해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나 싶었다. 


곧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에도 이곳에 공공질서를 해칠 만한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이 방송이 익숙한 듯 가만히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하철 내에 질서를 해치는 행위가 많아서 지하철 직원들이 곤혹을 겪었으면 이런 안내방송을 내보낼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다수의 멀쩡한 시민들을 향해 '잘못하면 처벌받는다'는 꽤 센 어조의 안내방송이 너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대다수의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듯이 말이다. 안내방송에 최소한의 거리낌과 심사숙고한 티는 내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 시대에 공공질서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해졌다. 공공질서를 위협하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띄게 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다 보니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전혀 조심스럽지도 않은 멘트와 정책이 여기저기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이 사회가 안전하길 바란다. 지하철도 안전하길 바란다. 또다시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요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정책결정자들도 시민들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일 수 있듯 고삐 풀린 권력 역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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