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풍남문_221229_직접 촬영_흑백처리 말없는 사람들이란 시를 골랐다. 정양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대학생 학부 수업 때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베스트셀러 책에 있었던 것 같다. 정양, 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샀지만 깨끗하다. 하얀 표지에 투박한 그림이 있다. 난 그것을 마우스 받침대로 쓰다가 어느 날 결심하게 됐다. 시를 읽고 감상문을 적자. 그렇게 내 브런시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 나는 진짜 말이 없었다. 오죽하면 교수님이 숫기 없는 내가 발표 때 떠니까 이렇게 호통을 치셨다.
"xxx, 너 술 마시고 안 왔냐?"
그런 나라서 '말 없는 사람들'이란 제목에 끌렸다. 나 같아서. 공감이 되어서 골랐다.
겨울 아침 해장국밥집에
말없는 사람들 서넛이
해장국밥을 기다린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들 말이 없는지
해장국밥 말고 무얼 또 기다리는지 1)
나는 도입부가 너무 좋았다. 겨울이라는 서정적이고 창백한 공간 속에서 해장국밥집이라는 뜨거운 공간의 대비가 잘 보였다. 그리고 궁금해지게 '말없는 사람들 서넛이, 해장국밥을 기다린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들 말이 없는지, 해장국밥 말고 무얼 또 기다리는지' 굉장히 의미심징하다. 그래서 좋았다. 이야기가 있어서.
맨 처음에는 실망했다. 해장국밥이라니. 너무 아저씨 같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시를 배울 때에는 동어반복은 피하라고 했는데 저 시는 떡하니 같은 말을 10번이나 썼다. 그래서 실망했는데 이것을 보고 타이핑으로 옮기는 과정 중에 나는 감동 먹었다.
이른 겨울 아침에 삼삼오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똑같이 뜨거운 해장국밥을 먹기 위해 한 장소에 모였다. 화자는 저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음에 안도하고 만족한다. 그리고 같은 공간 속에서 노름꾼도 해고된 노동자도 수배자도 시인도 모두 똑같은 음식인 '해장국밥'이 나오길 기다리고, '해장국밥'은 보란 듯이 모두에게 동시에 나오며 공평하게 혀를 데일 정도로 뜨겁다. 사회 속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파전처럼 해진 그들을 '해장국밥'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하나로 단단히 데우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나에게 해장국밥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1942년 태어난 정양 시인이 6.25 전쟁도 간접 경험하고, 5.16 군사 쿠데타도 겪고,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겪은 그다. 그가 다니는 해장국밥 집에는 노름꾼, 해고된 노동자, 도둑놈, 정치꾼, 수배자도 올 수 있다. 이게 지금은 모두에게 공평한 '해장국밥'집 같아서 좋다. 실은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추측이다. 하지만 역으로 본다면 앞에 서술된 사람들 모두 해장국밥집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말없는 것이 맘에 걸린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맘에 걸린다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맘에 든다
누구인지 몰라서 맘에 든다
말없는 것이 맘에 든다 1)
나는 정말 이런 애매모호한 감정이 좋았다. 말없는 것이 불편하고, 또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또 나를 관심 있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그 말 너무 이해가 간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서로를 의심하고 동시에 화자 자신도 의심 받는 이중적인 상황 같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보인다. 이래서 시도 여러 번 읽어야 하나 보다.
그렇다. 나는 정양 시인이 굉장히 연출도 잘 했고 동시에 인간의 모호한 내면도 잘 표현한 것 같다.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략)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덜어 먹고 덜어 먹어도
끝끝내 식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해장국밥보다 더 뜨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죽음보다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1)
여기서 구체적으로 화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덜어 먹고 덜어 먹어도 끝끝내 식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고 있다. '해장국밥보다 더 뜨거운 것' '뜨거움을 참고서 덜고 또 덜어서 노력해서 먹는 그것' '사랑보다 죽음보다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고 있다. 난 그냥 '사랑' '죽음' '혁명'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보다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고 어떤 초월적인 존재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하지만 그 앞에 명시된 단어들을 현재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혁명 4.19로 읽힌다. 민주화 운동 시대에 사람들은 평화로운 봄을 바랐다. 사랑했고, 죽음을 맞이했고, 혁명에 불타올랐다. 나는 '끝끝내 식지 않는 것'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ost '변하지 않는 것'이 떠올랐다.
"すれ違う人の中で 君を追いかけた
変わらないもの 探していた
あの日の君を忘れはしない
時を越えてく思いがある
僕は今すぐ君に会いたい"
"스쳐 지나가는 사람 속에서 너를 뒤쫓았어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있었어
그날의 너를 잊지 않아
세월을 건너가는 생각이 있어
나는 지금 당장 너를 만나고 싶어" 2)
미래에서 기다릴게, 그것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명대사다. 미래에서 온 소년이 소꿉친구였던 소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였다. 우리는 기다린다. 오지 않은 미래가 희망적이고 찬란하기를. 그런 과정에서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꾼다.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해장국밥처럼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난 이 마지막 결말이 되게 마음에 든다.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해장국밥처럼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 내가 매일 사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안정적인 미래가 쉽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공감이 갔다. 난 이게 내가 처음으로 읽고 썼던 <시 감상문>이었다. 되게 행복했다.
1) <출처, 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정양, 창비, 1997>에서 말없는 사람들 시 내용 일부 인용
3) 풍남문_221229_직접 촬영_흑백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