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최남단 항구도시, 타리파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시험에서 목표하는 성적을 받았을 때, 꿈꾸던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할 때, 우리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성취감뿐만 아니라 특별한 감정을 더해준다.
외계어로만 느껴지던 음절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 전달되고 이해되는 순간,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자란 누군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 우리는 짜릿함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2018년 스페인 여행, 남부에 위치한 타리파에 머물렀을 때였다. 현지인 한 명과 대화를 하다가 너무 기뻐 혼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Puedo entender todo lo que me dices! "
" 나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완벽히 이해돼! "
어릴 때부터 나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유럽의 스페인과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은 축구 강국이었으며, 도미니카, 멕시코, 쿠바 등 중미 국가들은 야구 강국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를 따졌을 때,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원서를 쓸 때에도 스페인어 학과를 지망했었다. 비록 성적이 부족해 다른 학과에 입학해야 했지만, 언젠가는 꼭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부터 그 꿈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독특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 단순히 여행만 가는 게 아니라 직접 현지에 가서 언어를 배워보면 어떨까? "
병장 때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고, 전역하고 나서는 매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청강했다. 남는 시간에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스페인 여행에서 내가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 무조건 자신감 있게
현지인들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자. "
관광지를 찾아갈 일이 있으면 지도를 검색해보지 않았다. 문법도 단어도 몰랐지만 스페인어 문장 전체를 외웠고, 길에서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 Disculpe,
donde esta el Museo del Prado? "
(실례지만 프라도 미술관이 어디 있나요?)
" Perdon,
Como puedo llegar al Museo del Prado? "
(실례지만 프라도 미술관에 어떻게 갈 수 있어요?)
" Hola,
estoy buscando el Museo del Prado. "
( 저는 프라도 미술관을 찾고 있는데요. )
고맙게도 스페인 사람들은 매번 친절하게 나를 도와주었다. 처음에 스페인어로 설명을 듣고 나면 이해가 되지 않아 넘기곤 했지만, " 고마워 " 라고 답하며 헤어진 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 Iziquierda, derecha "
( 왼쪽, 오른쪽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니 스페인어 단어가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고, 문장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행 초반만 해도 바닥이었던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성장해갔다.
세계여행 50일 차,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숙소 로비로 나왔다. 노트북을 꺼내 어느 때처럼 스페인어 유튜브 영상을 보려는데, 옆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바로 옆에 있는 현지인과 대화할 수 있는데, 혼자 공부할 이유가 없었다.
노트북을 덮고 그 친구에게 곧바로 말을 걸었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타리파, Tarifa 에 위치한 스페인 봉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파트를 구하기 전까지 잠깐 호스텔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화가 이어지는데, 다른 날과는 느낌이 달랐다. 스페인 사람과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이 사실에 나도 모르게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 Puedo entender todo lo que me dices! "
" 나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완벽히 이해돼! "
학원, 과외, 혹은 유학 경험 없이, 여행과 자신감만으로도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느꼈던 "짜릿함" 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글을 통해 내가 스페인어를 배웠던 방법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