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김소연>을 필사하며...
여행은 어땠느냐고...... (중략)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하루 끝에서, 나는 번번이, 내일부터는 위험하자고,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내가 여기 왜 와 있나 싶은 마음, 뻔히 다 아는 삶의 비의를 이 먼 곳까지 찾아와서 바라봐야 했을까 싶은 기분까지를 오간다. 이런 식의 농밀한 꿀꿀함의 총합은 그럭저럭 홀연한 깨달음과 끝과 끝에서 만나는 느낌마저 든다. 그 기분, 꽤 괜찮더라.
<마음사전, 김소연> 293쪽
(작문) 이번 일주일 여행은 어땠느냐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보상받고 싶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게을리 보내려 했지. 그 여유가 서럽게 눈물 나더라. 하루는 왜 이걸 서러워하나 즐겨야지 하며 나를 다독였지. 이렇게 며칠 보낸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니 지금을 즐기자고 말이야. 텅텅 비어 있는 시간 속에서, 나는 자꾸 해야 할 목록들을 작성하고 밀려있는 일들을 바라봤어. 고질독, 서평쓰기, 책통아 신청서 쓰기, 마음여행 마무리하기, 아이들 전기장판 깔아주기, 김장 준비하기....... 내일부터는 이 일들을 밀리지 말고 하나씩 꼭 해내자고, 원래 가지고 있었던 습관을 버리지 말자고 꾸준하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거지. 그러면서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싶은 마음. 뻔히 다 아는 그 처연함을 지속하려는 그 마음을 바라봤지.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자유 속에서 그것들을 해 왔구나 싶은 기분까지 들었어. 이런 식의 두터운 허탈은 그럭저럭 시원한 알아차림을 준다. 그 기분, 꽤 좋더라.
<갑자기 찾아온 퇴사 앞에서...>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 그러니깐 이 일에 대한 내 여행은 어떠했지. 무턱대고 선택한 전공. 나름 유망직종이라 여기는 직업란에 속해 있기에 선택했고, 마침 집 옆에 있는 학교에 이 전공이 있었지. 혹시 몰라 교직 이수까지 해가며 그 이름도 없는 지방대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직장 잡는 데 성공했어. 그때부터 진정한 독립이 시작됐지.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을 알게 된 거야. 그것에 지칠 때쯤 결혼을 했고, 결혼 후 잠시 일을 쉬었어. 쉬었다가 다시 이직하려고 했지. 하지만 그때부터 재취업이 잘 안되더라. '결혼한 여자'라를 꼬리표 때문이었을까?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일까? 경기 탓, 실력 탓 등 이런 잡다한 이유들이 겹겹이 모인 탓이었을까. 그래도 운 좋게 프리랜서로 전향할 수 있었어. 보수가 훨씬 좋았지. 1년 고생해서 벌 돈이 6개월만 일해도 모일 정도였으니깐. 하지만 그럼 뭐해. 임신하자마자 모든 걸 내려놔야 했어. 그때부턴 이 일에서 하향곡선을 탔어. 육아와 병행해야 했거든. 그래도 어찌어찌 이 덕분에 생계유지를 했어. 그 사이 내 집장만도 했고(반 이상 빚이지만 말이야. 어찌 되었든.). 이렇게 쓰고 보니 고마운 거 있지. 임신 이후부터 이 일이 재미가 없었어. 일에 대한 성취욕을 보상받을 수 없었지. 대신 가족부양을 할 수 있었으니깐 가정 쪽으론 성취욕을 채워준 거야.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일을 놓을 수가 없었어. 여기서도 월급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이것보다 더 작은 월급을 받아야 했어. 그 또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보단 가정의 급한 불을 끄는 용도였을 테니깐. 그렇게 그렇게 그래도 지금껏 잘했어. 그 사이사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 시도를 했잖아. 그 사이 마음을 살피며 살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가정이 행복하게 잘 돌아가고 있잖아.
어떤 날은 지금의 모습이 나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억울한 사연이 되었다가, 어떤 날은 가족 동공의 희생과 배려라 여기며 행복을 만끽해.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지. 내 마음에만 불이 날 뿐,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 하나 모자람 없는 행복이 존재하니깐. 어쩜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감사하다 여길 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을 떠나보내고 나니 막막해. 그동안 일하면서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해 놓고 싶었어. 하지만 막상 그만두고 나니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잘 모르겠는 거야. 엄청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어. 마음이 참 아프더라.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런 거야. 아이들 돌보며, 가정 살피며, 일하며, 여기서 또 다른 무언가까지 다 잘할 수 있겠냐는 거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우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꾸역꾸역 강요하고 있었어. 왜 글의 끝마무리는 늘 좋아야 한다는 강박처럼 말이야. 왜 그렇게 강박에 절어 살아야 할까? 누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어.
어차피 벌어진 일. 이제부터 사부작 움직이면 돼. 그리고 우선은 스스로 꼭 끌어안아주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게 먼저지. 허탈감에 울고 싶으면 울고, 걷고 싶으면 걷고,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만나고 이렇게 말이야. 하고 싶은 거 충분히 하면서 좀 쉬게 두 자. 스스로를 보채지 말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보내게 될지는 내 마음에 달린 거니 여유라는 것을 잘 챙겨 보자.
그동안 참 잘했어. 너무너무 잘했어. 그러니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지금껏 너의 여행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고 꼭 끌어안아줘. 그럼 된 거야.
그다음은 천천히 지금처럼 읽고, 쓰면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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