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폴란드 바르샤바로 교환학생을 떠나다
비행기가 뜨고 있는 것 같았다가, 후진하는 것 같았다가, 후진이 말이 되나 싶어 감은 눈을 떠 봤더니 비행기는 아직 출발을 않고 멈춰 있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에 다시 눈을 감고 비행기의 진동을 느낀다.
이곳의 러시아 승무원들은 러시아 승객을 알아보고 러시아어로 메뉴를 물어본다. 내 눈엔 다 같은 백인인데 어떻게 러시아인을 알아보는 걸까. 우리가 귀신같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그 와중에 나는 승무원의 입에서 나온 '르바'(생선)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혼자 뿌듯해했다. 지난 한 달간의 짧은 폴란드어 공부가 처음으로 쓸모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공부한 '르바'는 폴란드어인데 러시아 승무원들도 아주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쓴다.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는 엄연히 다른 언어지만 종종 발음과 철자가 아주 비슷해 의미를 때려 맞추기 쉬울 때가 있다. 내가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던 폴란드 친구 다샤는 벨라루스 출신인데, 폴란드어와 러시아어가 둘 다 유창해서 폴란드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러시아 노래를 부르며 맥주를 마시곤 한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옆 나라 사람들끼리 말이 얼추 통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국경의 높이가 마을 간의 경계처럼 낮아지고 서로의 노래를 내 것처럼 부를 수 있게 되는 느낌일까?
나는 이제 그 느낌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기 위해 떠난다. 연고도 없는 바르샤바에서, 5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 친구는 내게 '5개월이면 거의 반년이잖아'라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낯선 곳에서 보낼 시간의 길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시간은 생전 나와 포옹 않던 아빠가 공항에서 멋쩍게 두 팔을 벌리게 만드는 정도의 길이.
5개월 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5개월 뒤의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