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그의 대답
교환학생 면접 장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지어진 숲 속 건물이었다. 4년 내내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건 멀기도 멀거니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 어떻게든 도착하겠지 방심하고 발을 뗐다가 면접 시작을 십여 분 앞두고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는 급해진 마음에 숲을 나가던 아무나 붙잡고 ‘새천년관이 어디죠?’라고 물었다.
다행히 내가 붙잡은 행인은 천사 같은 분이었다. (물론 초면인 사람 앞에서 숨 고를 여유도 없고 땀에 절어 있으며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인간을 뿌리칠 사람은 많이 없으리라) 어쨌든 그분은 나를 무시하지 않고 가던 길을 돌아 나와 함께 면접 장소까지 파워워킹을 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분이 내 교환학생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크고 작은 친절 중 그 첫 번째인가 싶다.
건물 로비는 면접을 기다리며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푸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면접 장소까지 나를 인도해 준 천사분께 인사하고, 명단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가서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나의 긴장 풀기 비결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챙겨 다니는 페레로로쉐 한 알 먹기. 꼭 청심환을 까먹는 느낌이랄까. 먹고 난 뒤에 이에 땅콩이 끼진 않았는지 체크도 필수다.
면접은 다대다로 이루어졌다. 이름은 무엇인지, 밥은 먹었는지,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면접관들의 온화한 미소 다음의 질문은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학생은 왜 교환학생을 떠나려고 하나요?
내 옆 지원자는 외국 대학에서 전공 수업을 들으며 경쟁력을 쌓고 싶다고 했다. 음. 클래식한 답변. 나는 앞 지원자의 말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솔직함으로 승부하자 싶어 대만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머물며 그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는 일이 얼마나 재밌고 멋진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또 새로운 문화를 겪어볼 수 있는 방법 중 교환학생보다 좋은 길이 없습니다. 한 학기 동안 제가 선택한 나라에서 살고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워오고 싶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면접관의 얼굴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온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이 솔직함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했는데도 면접에 대한 긴장으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와중, 내 옆 지원자가 말했다.
한국이 싫어서요.
외국에서 한국으로 대학을 왔어요. 이곳 사람들은 불친절해요. 내 나라에선 당연했던 매너가 이 곳에선 통하지 않아요. 몇 달 전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지 않아 코가 부러졌어요. 문화 차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실패했어요. 더는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아요. 교환학생은 잠시나마 내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코가 부러졌다는 이야기에 나와 지원자 몇 명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입에서는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의 담담한 표정과 어두운 옷차림, 그리고 그가 대답을 마친 순간 면접관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정적. 면접관은 침착하게 그의 차례를 마무리하고 다음 면접자에게 질문을 이어나갔지만 그 뒤로 이어진 질의응답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가 결국 교환학생을 떠났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교환학생을 마치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 어두운 표정, 그 정적, 그리고 한숨.
나는 그 뒤로 문 여닫을 때는 꼭 뒤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의 면접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학교 건물 곳곳에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자는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스티커를 볼 때마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