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폴란드로 떠난 세 가지 이유

당신에게 딱 맞는 교환학생 나라를 고르는 방법

by 물잔

교환학생은 단연코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다. 대학생인 내게 교환학생은 한국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몇 달 동안 '살아보기'를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비교적 오래 머무르는 나라인 만큼, 나는 며칠 밤을 새운 조사와 고민 끝에 당시에는 생소했던 '폴란드'를 교환학생지로 정해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란드에서의 한 학기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사실 모든 교환학생이 행복한 경험을 하고 오는 건 아니다. 혼자서 타지에 나가 생전 처음으로 인종차별도 당하고 생각과 다른 현실에 실망도 하면서 위축되거나 우울한 학기를 보내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 내가 후회 없는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내가 운이 좋아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지만 동시에 폴란드가 나에게 잘 맞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들어본 적도 없는 '폴란드'라는 나라를 교환학생지로 선택하게 된 것인지, 내가 폴란드로 떠난 세 가지 이유를 공유하고자 한다. 교환학생과 해외여행을 앞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영어는 어딜 가든 쓰게 되니까


많은 사람들은 교환학생 또는 해외여행을 통해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어를 위해 미국, 영국, 호주만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영어권이 아닌 국가로 떠나도 결국 영어는 쓰게 되는 법. 비영어권 국가로 눈을 돌리면 선택지가 확 넓어진다. (사실 영어 실력은 어느 나라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 나라에서 한국인들과만 어울리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어느 나라를 가든 교환학생들은 영어로 소통한다. 실제로 폴란드 학교에서는 독일인, 벨기에인, 일본인, 조지아인, 싱가포르인, 등 다양한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함께 지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악센트와 왕초보에서 원어민까지 다양한 수준의 영어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대부분 나처럼 영어가 완전히 외국어인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문법이 틀려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손짓 발짓을 하면서 편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실수해도 주눅 들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라 오히려 회화 능력이 더 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영어가 안 통하지 않냐고? 맞다. 하지만 안녕하세요/실례합니다/감사합니다 정도의 표현만 알면 장을 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정도의 일상생활에는 별 무리가 없다. (숫자는 손가락, 예/아니요는 끄덕끄덕 도리도리로 대체 가능하다) 만약 이보다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 예를 들면 통장 개설, 요금제 변경, 택배 부치기 등 --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을 것이므로 영어로 대화하면 된다.


2. 실은 그 등골이 제 등골이라서 말입니다


나는 교환학생 경비의 대부분을 직접 마련했다.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들과 씨름하고 동고동락하며 마련한 내 피땀눈물이 섞인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정승 같은 교환학생 생활을 누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싼 나라로 떠나기였다. 단순 명쾌!


세계 물가지수 순위. 출처 numbeo.com

구글에 cost of living index를 검색해 보자. 간단하게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생활비 지표 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 1위는 버뮤다, 2위부터 6위까지는 스위스의 도시들이 차지하고 있다. 컨트롤 + F를 눌러 서울의 물가 순위를 확인해보니 서울은 49위. 그 주변과 아래 부분을 중심으로 교환학생 후보지의 물가들을 살펴본다. 물가가 지나치게 낮은 곳 중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는 목록에서 지운다.


우리나라 서울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물가 지수. 과장 조금 보태면 바르샤바의 물가는 서울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러나 교환학생지를 고를 때 물가만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교환학생은 고려해야 할 경비가 많다. 등록금은 기본이요, 기숙사비(또는 자취 월세 비용), 식비(자취용 식재료 값 또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한 학기 식권 비용), 교통비(동네 교통비는 물론이요 주변 도시·나라로 여행할 때 드는 경비), 초기 정착 비용(기숙사든 자취든 돈이 예상외로 들더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로 빠져나가는 돈까지(지갑을 잃어버리거나, 도둑이 들거나, 교통권을 안 챙겨서 벌금을 물거나).


교환학교는 저마다의 정책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학교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식권을 의무로 구매해야 하고, 또 어떤 학교는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아 학생이 스스로 주변 지역에 집을 구해야 한다. 이런 정보는 교환학교마다 사이트를 방문하고 후기를 읽으면서 정보를 얻지 않으면 모르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비영어권 국가 중 물가지수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보다 낮은 국가들만 추려 목록을 인쇄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도시와 학교는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이다. 내가 다녀온 폴란드의 학교는 먼 대륙에서 온 학생들에게 기숙사 요금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 폴란드에 플러스 점수.


'유럽의 심장' 폴란드는 유럽의 중심에 있다.

학교뿐 아니라 나라의 특성도 고려하면 더욱 좋겠다. 가령 영국은 섬나라라서 주변국으로 여행을 하려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면 대부분 쇼핑 한 번 가는데도 자가용을 타고 수십 분을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면허도 친구의 자가용을 매번 빌려 탈 능력도 없으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미국을 목록에서 지워 버렸다.) 유럽의 독일, 폴란드, 체코와 같은 나라는 내륙이면서 유럽 중심에 위치해 주변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에는 버스·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은 저가 버스 회사가 많이 있으므로 5만 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으로 주변국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여기서 나의 국가 선택지는 유럽 내륙에 있는 물가가 저렴한 나라들로 좁혀졌다.


3. 교환학생 가서 들은 수업이 하나도 인정이 안 된다고요?


교환학생 준비를 시작한 지 중반 정도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교환학교에서 들은 수업들을 한국에 돌아와서 인정받는 방식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학교는 기록으로만 남겨주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수업의 난이도에 따라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전공 수업을 듣고 온 게 아니면 인정에 박한 분위기였다.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한 학점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 말인즉 교환학생 한 학기가 졸업 측면에서는 쓸모없는 한 학기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졸업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는 뜻.


나는 교환학생 떠나서 미술 수업, 사진 수업, 연극 수업도 듣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었는데…. 하지만 교환학생 가서 들은 수업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한 학기 어치 수업을 더 들어야 할 수도 있고, 이는 결국 한 학기 등록금만큼의 금전적 손해였으므로 나는 내 교환학생 시간표를 내 전공인 경제학 수업으로 꽉꽉 채우기로 했다.

바르샤바 경제대학교. 출처 efa2018.sgh.waw.pl

마침 목록에 남은 학교들 중에는 경제대학교가 있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바르샤바 경제대학교. 열리는 수업의 대부분이 경영·경제 전공이었다. 이 학교라면 어떤 변수가 생겨 시간표를 수정하더라도 내 시간표를 모두 경제학 수업으로 채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여기라면 내 학점 인정 문제도 해결되고, 위치는 유럽의 중심 폴란드에서도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해 있으니 대중교통도 완벽하고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니기에 지리적 조건도 완벽한 셈. 게다가 물가까지 저렴하니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면서 살 수도 있고, 또 내가 마침 기숙사비 할인 대상인 먼 대륙에서 오는 학생이 아닌가!


이렇게 폴란드 바르샤바 경제대학교를 최종 교환학생 학교로 정하면서 나의 A4용지 수십 장, 약 열흘 간의 끝없는 조사는 끝이 났다.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일주일 넘게 두문불출하면서 벌게진 눈으로 나라별 생활비와 집값, 대중교통, 각종 변수를 조사하던 기억이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자마자 모든 종이를 찢어 날려버렸다.


교환학생 계획을 처음 세우기 시작할 때의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는 아무런 정보도 기준도 없이 '여기에 가면 좋겠다', '여기도 가보고 싶다', '여기도 재밌을 것 같다' 등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만 하며 헤맸다. 물론 당시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라를 고른다면 교환학생 떠나기 전뿐 아니라 떠난 후에도 계속 행복할 수 있다!


나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교환학생을 다녀와 부담 없는 물가, 여행 다니기 좋은 위치,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붐비지 않고 조용한 나라 분위기, 좋은 친구들까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한 학기를 보냈다. 물론 사건사고도 문제도 힘든 날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기준과 정보로 여러분께 딱 맞는 나라를 고를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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