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 개학이네요."
고2 아들이 말했다.
"그러네. 겨울방학 동안 열심히 했네. 애썼어." 할 말이 있는 듯 옆에 서있길래 물어보았다.
"무슨 할 말 있어?"
"게임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1주일 전, 게임 시간을 늘렸었다. 이제 개학이니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줄이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고 말하려는 건가? 그렇게 말하길 바랐다.
"게임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개학하면 게임할 시간이 모자라서요."
아뿔싸.
나의 예상과 바람은 그 어느 것도 맞질 않는구나.
이해하기 어렵다. 18살의 나에게 물어봐야겠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 상황이 이해가 가니?
수능이 1년 하고 8개월 정도 남았네. 부모님은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자고 하겠지만 까마득한 시간이지.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밤 10시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고 학교 정문에 도착해 있는 셔틀에 탑승해서 바로 독서실에 갔어. 그리고 새벽 1시가 돼서야 집에 갔고. 이렇게 1년이 넘게 지내야 하는 건 끔찍하다고.
TV도 보고 싶고, 라디오도 듣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었지. 친구들과 분식점과 카페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수다도 떨고 싶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싶었다고. 멋지게 연애도 하고 싶고... 이 모든 것을 참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했지.
집에 있을 때는 엄마눈을 피해 드라마를 보다가 혼난 적도 있고 특단의 조치로 거실의 TV가 안방으로 옮겨졌을 땐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잘 알잖아. 그렇다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엔 온통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지.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 있으면서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한쪽엔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으며 공상에 빠지기 일쑤.
자식을 생각해서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너무 잘 알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고. 사랑의 이름으로 공부를 강요해서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면야 나도 바라는 일. 억지로 보내면 학원이든 독서실이든 의자에 앉아서 딴생각뿐. 머릿속을 조절할 순 없으니깐.
태정이도 편하지만은 않을 거야. 게임을 하면서도 불안하고. 약속을 했잖아. 중간고사까지 목표한 성적이 안 나오면 다시 계획을 수정하자고. 믿어달라고 하잖아. 믿는 수밖에. 게임하는 시간에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그 외 시간에 최대한 집중한다고 했으니 짧고 굵게 초집중을 하리라 믿어.
12시를 넘기지 않고 자고,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고, 깨끗이 씻고, 잘 먹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예의 바르고. 얼마나 장점도 많아. 장점을 샅샅이 더 찾아보도록.
새 학년을 맞이한 날 아침에 열여덟 살의 내가 보냄.
개학날 아침, 태정이는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노크를 했다.
"엄마, 잘 주무셨어요."
"응... 그래."
섭섭한 마음에 이 정도로만 인사를 했다. 환하게 웃어주지 못했다. 일찍 일어났다고 칭찬하지 못했다. 아침 식사로는 태정이가 좋아하는 신선한 샐러드와 뜨끈한 국을 차려주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온 마음을 다해 믿고 응원하자.
학교에 있는 동안은 머릿속에 쏙쏙 넣으렴.
뭘?!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욕심은 넣어두자.
쫌 쫌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