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성실한 교사로 일했다. 내 몸에 새로 생긴 습관들은 거의 학교에서 형성된 것이다. 혹시 내 몸에 코를 대보면, 학교 냄새가 심하게 날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걸어가는 내 모습만 봐도 그런 것 같다고 웃는다.
학교는 교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첫 직장에서는 복장 규정이 엄격해 청바지와 티셔츠는 물론, 눈에 띄는 색상의 옷조차 피하라고 했다. “정성과 사랑으로 가르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어느새 ‘학교가 원하는 교사상’에 맞춰 행동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 틀에 맞춰 나를 다듬어가고 있었다.
그해 만난 이들은 정말 독특했다. 나와 다른 점이 아주 많았다. 업무와 학년을 발표하고, K와 L을 소개받았다. 그들은 내가 일하는 지역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매일 복도에서 마주칠 동료라면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
첫 만남은 대개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하거나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키가 크고 털털해 보이는 K는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고 인상이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깍듯한 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료로 받아주길 바랐는데, 그의 사장님 같은 포스에 기가 눌리고 말았다. 그 옆에 있던 L은 날카로운 얼굴에 회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를 아래로 힐끗 쳐다보더니, 표정 없이 눈인사만 했다. 마른 체격에 까칠해 보이는 그를 보니, 그해 1년이 암울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3월이 되면 업무로 인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학교에서는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나머지는 수월하다”는 농담이 돈다. 새 학년 초의 부담감을 담은 말이다. 나 역시 한 달만 버티자는 마음가짐으로 일에 몰두했다. 피곤해도 교문을 들어서면 밝고 상냥한 모습으로 변했다. 억지로 웃다 보니 어느새 그 웃음이 자연스러워져, 얼굴 근육이 저절로 올라가는 걸 느꼈다. 이런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어느새 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K와 L은 나를 볼 때마다 “김 선생, 오늘 할 일은 내일 해도 돼.”라고 말했다. 여유로운 표정과 느긋한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그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 나는 제출 기한을 맞추기 위해 남아 일했다.
학년 부장이었던 K는 여유를 산처럼 쌓아두고 언제나 느긋했다. 그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나는 일을 미루는 게 불편하고 빨리 끝내고 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쫓기듯 일하지만, 그는 언제나 미루고 지켜보는 타입이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일을 요구하지 않아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L과 내가 일을 떠맡게 되었다.
K는 묻지도 않은 개인적인 집안 사정이나 요즘 만나는 여자 친구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시를 좋아하고 가끔 글을 쓴다는 말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젊은 시절이 궁금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는 이전에 다른 일을 하다 교직으로 돌아온 듯했다. 또래의 깐깐한 관리자들과 달리 빈틈이 많았고, 웃음도 쉽게 터뜨렸다.
그에 비해 서울깍쟁이 L은 정반대의 성향이다.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한다.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너무 매몰차게 굴어서, 그에게는 절대 부탁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다. L은 날렵한 안경테 너머로 빠르게 사람을 꿰뚫어 보았다. 그의 눈에 한 번 포착되면, 상대방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어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말했다. 모두 맞는 건 아니어도 그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서울깍쟁이 L이 털털한 K를 대하는 모습이 조금 의외였다. 부장 업무에 구멍이 많아 답답하다고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혼자 해도 될 일을 항상 나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걸 보면, 내 성향도 이미 파악한 듯했다.
일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회의를 깜박했다. L이 빨리 오라고 교실 문을 두드릴 때야 생각났다. 나를 기다리는 그들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늦은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는 내게 털털한 K가 말했다. “김 선생은 참… FM 같아!” 순간, 라디오 채널에서 말하는 FM이 머릿속에서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FM이 라디오 소리가 잘 들리도록 깨끗하게 맞추는 주파수가 아님을 알아챘다. L의 입에서 삐죽이 새어 나오는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순간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물어보면 내가 정말 고지식하고 답답하다는 것을 확인받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마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융통성이 없는 내가 답답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 원칙대로 반드시 해야 해요.”
“오늘 못하면 내일이 있고 또 다음 주도 있잖아요?”
“그렇게 미루면 힘들어서요.”
원칙대로 하라고 나를 떠미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매사에 자신을 몰아붙였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거나 관리자가 요구한 일이라면, 당연히 알아서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교사로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그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사로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몰래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의 주파수가 나와 멀어질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고, 색안경을 끼고 내 멋대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파수는 일정하지 않더라도 또 원칙대로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차츰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교사로서 갖춰야 할 표준 주파수에서 꽤 벗어난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들보다 더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가 많았고, 실제로 그런 적도 있다. 내가 답답한 사람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그래서 맞는 것 같다.
주파수는 서로 달라도 그해 우리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형님!, 아우!”라고 부르는 그들 사이에서 원칙에 얽매인 나를 점차 풀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FM’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고정된 주파수를 벗어나 유연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FM 같은 사람’이라고 불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달리 받아들인다. 원칙과 유연함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