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았지만, 갔다

by 은진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문자와 톡이 이제는 조용하다. 업무로 얽힌 연락도, 가끔 이어지던 인연도, 직장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휴대폰 연락처를 훑다 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되감기듯 스쳐 간다. 지울지 말지 망설이게 되는 이름이 많았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터치하며 내리다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걸렸다.


카톡 속 남자는 말끔한 턱시도를 입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낯선 사진이었지만, 웃는 눈매와 전체적인 인상이 그 아이를 닮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단단한 몸,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한 웃음까지. 그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잘생기고 멋진 신사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해 다시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얼굴이 선명하게 겹쳐 보였다.


문득 오래전 그 아이가 보낸 문자 한 줄이 떠올랐다.
“선생님, 저 이제 축구 못 하게 됐어요.”
그 한 문장이 마지막이었다.

발목 부상으로 더는 공을 찰 수 없게 된 아이는, 그렇게 사라지듯 연락이 끊겼다. 꿈을 접는 고통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말은, 고작 “힘내.” 그 한마디뿐이었다. 위로라기엔 가벼웠고, 도움이 되기엔 무력했다.


서로 잊고 살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때 전하지 못한 위로를, 이제라도 제대로 건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하지 못한 응원을 지금에서야 전해주고 싶었던 걸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한때 그 아이의 선생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가끔은 내가 교사라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질 만큼 마음을 울리는 아이들이 있다. 현이가 그랬다. 축구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어떤 길에서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꿋꿋이 걸어갈 거라 믿었던 아이였다. 그 믿음은 여전히 유효했고, 그래서 반가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초대한 것도 아닌데 괜히 힘이 들어간 말투로 썼다.

“결혼식에 갈게.”


봄을 재촉하던 비가 내리던 날, 서산으로 향했다.
축축한 공기, 흐린 하늘, 봄맞이 차량들로 붐비는 도로. 어디까지가 꽃놀이고 어디부터가 하객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도 그 긴 행렬에 섞여, 앞차를 하염없이 따라갔다.


나는 제자들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잊고 지내주는 쪽이 더 마음 편하다. 그래서 초대받지도 않은 결혼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건, 나로서도 조금 낯선 일이다.

‘혹시 내 얼굴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많이 늙었다고 놀라면 뭐라고 하지?’
예전의 내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라도 맞아주면 그것만으로도 감동인데…’
괜히 혼자 유난인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 분주해졌다.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채 식장에 들어섰고, 신랑 이름을 찾았다.


“선생님, 못 오실 줄 알았어요.”
“무슨 소리야, 꼭 온다고 했잖아.”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예전 그대로세요.”
“정말? 고마워.”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그 반가움이 마음 깊숙이 전해졌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초등학생 시절, 현이는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축구 육성학교로 이름난 우리 학교에 전학까지 온 걸 보면,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경기와 빠지지 말아야 했던 응원은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아까운 주말 하루가 사라지고, 운동장엔 늘 먼지와 뜨거운 햇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응원도 업무입니다’라는 말에 마지못해 나섰지만, 속으로는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러다 현이를 통해 축구라는 세계에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특히 경기장에서 종횡무진 뛰는 모습을 볼 때면, 자연스레 박지성이 떠올랐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박지성은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매너 있는 태도, 진지한 눈빛, 지치지 않는 체력은 축구를 모르는 내게도 멋졌다.
“너 진짜 박지성처럼 될 수도 있겠다.”
농담처럼 아이에게 자주 말했지만, 꽤 진심이 섞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부모와 떨어져 숙소 생활을 하면서도 얼굴에 그늘 없던 아이. 거친 태클 대신 정직한 움직임을 택했고, 그런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웠다. 프로의 세계는 나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 눈에도 냉정해 보였다.


어느 날,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살펴보자는 취지로 다중지능 간이 검사를 진행했다. 현이의 운동 지능은 단연 돋보였다. 나는 웃으며 지나쳤지만, 현이는 그 결과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날 오후, 그의 아버지가 불쑥 학교에 찾아왔다.

“선생님, 현이가 정말 축구를 잘하나요?”

그 눈빛엔 단순한 호기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망설임과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검사 결과에 대해 이것저것 묻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그는 이미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마지막 확신을 나에게서 얻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축구 문외한인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저 아이의 꿈을 꺾이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을 덧붙여 성실히 답했던 것 같다. 축구라는 길이 그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환히 웃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이는 발목 부상으로 결국 꿈을 접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던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실이었을까. 하지만 결혼식장에서 나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축구부 유니폼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식장 곳곳을 누비며 재잘거렸다. 까맣게 탄 얼굴의 아이들이 “코치님!”을 외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아이들은 이제 현이의 제자들이었다.


현이는 지금 초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 공을 차고, 땀 흘리고, 그들에게 꿈을 이야기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내 눈은 화려한 식장도, 예쁜 신부도, 한껏 차려입은 하객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날 바쁘게 오가던 신랑만 보였다. 그가 아이들 틈에 섞여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쩌면 나는 저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결혼식에 오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축구선수라는 길은 막혔지만, 현이는 여전히 축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며, 이제는 꿈을 심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의 한때 선생이었던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봄날처럼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