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서진이가 헤헤거리며 나를 부르더니 책상 위에 무엇인가를 놓고 후다닥 나가버린다. 여전히 뛰는 소리가 경쾌하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눈치 볼 것 없이 내달리는 듯했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교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반으로 접힌 8절 도화지가 보였다. 연필로 쓴 글씨가 오른쪽으로 점점 내려가더니, 마지막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투명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건 제가 드리는 용돈이에요. 절대 돌려주지 마세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 녀석, 끝까지 특별하다.
처음부터 그랬다. 3월 첫날부터 집중을 유도하는 내 노력을 비웃듯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아이였다. 서진이는 늘 웃었지만, 그 표정엔 반항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눈빛. 억눌린 에너지를 복도를 뛰며 풀어내는 것 같았다. 숙제는커녕 교과서조차 놓고 오기 일쑤였고, 준비물도 늘 빈손이었다. 일부러 나를 약 올리는 것처럼 보여 점점 괘씸하게 여겼다.
유명인사처럼 쏜살같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지나가는 동료 교사들이 ‘또 서진이야?’라며 혀를 찼다. 수업시간에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함께 떠들곤 했다. 요주의 인물들이 그 주변으로 모였고, 복도든 급식실이든 어디서나 시끌벅적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무게를 잡고 큰소리를 쳐봐도, 녀석은 눈만 껌벅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 정도면 학부모 상담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드디어 상담 주간이 되었다. 나는 서진이 어머니와의 상담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 서진이를 쏙 빼닮은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힘들게 하죠?”
빼곡하게 그동안의 행적을 써둔 경영록은 슬그머니 뒤로 빼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가 잘못 가르쳤다'며 항의할 부모를 예상했는데, 미안함과 감사함이 담긴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를 보니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진이의 속마음이 조금씩 보였다. 형과 동생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 그리고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수시로 말한다는 것까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뜨끔했다.
그 후로도 변함없이 서진이는 뛰어다녔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니 아이가 달리 보였다. 자주 받았던 도서실의 전화.
“선생님, 서진이가 또 도서 대출증을 잃어버렸어요.”
처음에는 한숨 쉬며 받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반 독서왕이 서진이었다. 녀석이 아침마다 달려간 곳은 운동장이 아니라 도서실이었다. 항상 시끌벅적했던 아이가 책 속에서 조용히 몰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나는 서진이의 ‘절대 돌려주지 말라’는 당부대로 천 원은 돌려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치킨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서진이는 기분이 좋으면 장난스럽게 "선생님, 치킨 사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실컷 먹고 싶은 메뉴를 읊어대다 뜬금없이 다가와 사달라고 애원했다. 편지에는 그런 말이 없었지만 드디어 치킨을 사줄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천 원을 쳐다보며 서진이네 집으로 치킨을 배달시켰다. 녀석이 그렇게 먹고 싶다고 했던 황금올리브 치킨이었다.
나는 서진이의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가방 깊숙이 넣었다. 언젠가 또 다른 서진이를 만났을 때, 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간직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