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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획과 영감 Feb 24. 2022

어느 날 콘티 작가가 되었다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 4] 레드벨벳 '음파음파' MV


※본 글은 3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4. 어느 날 콘티작가가 되었다



일일 제작 PD로서 반나절 촬영을 무사히 마친 후, 다음 프로젝트엔 자연스레 (원래 신분이던) 연출부로 합류하게 되었다.


<1> 연출팀으로의 복귀


이어지는 작품은 레드벨벳의 '음파음파'라는 곡이었는데 아이돌 MV인 만큼 전체 제작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약 한 달여간의 기간 동안 기획부터 프리 Pre-production, 그리고 촬영까지 마무리돼야 하는 빡빡한 프로젝트였다.


레드벨벳 음파음파


이제는 작품이 오픈된 지 꽤 지났지만 세부적인 현장 상황은 대외비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여, 기획과 프리 단계에서 연출부로서 진행했던 업무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본론(그래서 어떻게 PD가 된 거냐고요!)으로 넘어가겠다.


(우선, 아직까지 Umpha Umpha MV 안 본 사람 있으면 보고 오시죠. 뮤직비디오 보러가기)


이때의 업무는 사실 연제부(연출+제작부)에 가까웠는데, 재밌는 사실은 이때 콘티 작가의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 연출 아이디어 제안 & 액팅 레퍼런스 수집


당시 제안했던 아이디어들 (평소에 연출 레퍼런스/촬영기법/사진 등을 아카이빙 해두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액팅 레퍼런스: 감독이 아티스트에게 디렉팅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 (각각의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 메인 소품 섭외 및 관리


클래식 카(소품차) 섭외


거북님 섭외


동물 섭외는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 (촬영 시 변수가 될 수 있는 동물의 특성 미리 파악+ 동물이 스트레스 덜 받을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하기에) 특히 이 작품에서는 몸집 크고 + 땅에서 활동 가능한+ 예쁘게 생긴 거북이가 필요했는데 동대문 애완동물 거리에선 조건에 맞는 거북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섭외 방법을 달리했다. 평소 즐겨보던 파충류 유튜버 '다흑'님이 운영하는 매장에 직접 전화를 했다. 나의 소속과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며, '채널에서 지인 분이 기르는 거북이 영상을 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분 연락처를 전달받을 수 있을지' 여쭸다. 그리하여 이 귀여운 거북이를 섭외할 수 있게 되었다. (장시간 촬영에도 불구하고 주인 분께서 협조를 정말 잘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두 번 세 번 감사하다)




▶ 움직이는 미술세트 조력


영상을 보면, 저 뒤 배경(도시건물세트)이 좌우로 움직인다. 스태프들이 새벽5시까지 밧줄을 열심히 땡겨 탄생한 장면이다


기상 예보 장면. 지도 위에 있는 해, 번개, 구름이 사방으로 움직인다. 이 장면도 뒤에서 연출부가 수동으로 조력해 연출했다


감독님이 지닌 연출적 아이디어가 기본적으로 풍부하고 기발하다. CG처리를 거치지 않고 '손으로 움직이는 요소들'을 이용해 장면을 구성하는 스타일이 영화감독 공드리와 닮으셨다. 그래서 이 작품을 작업하는 것이 더욱 설레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아티스트 동선 체크(속된 말로 '가위다마': 장비 세팅을 위해 대역으로 서 있다가, 아티스트가 오면 동선 안내) or 현장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을 바로바로 조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 콘티 작업


나는 내 첫 단편영화를 제외하고는 콘티를 그려본 적이 없다. 그림실력 또한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 그리던 수준에서 멈춰있는데 무슨 이유로 이런 상업 작품에서 '감히' 콘티를 그리게 된 것일까.


일단, 아래의 콘티는 촬영 12시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결과물이다. (그림체.. 민망. 양해 부탁드립니다)


워낙 준비할 것이 많았던 프로젝트인지라, 전문 콘티 작가님을 섭외해 하나하나의 컷과 카메라 무빙을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나 콘티가 없을 경우 3일 촬영이었던 본 프로젝트의 딜레이 가능성이 굉장히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덕션 측에서 촬영에 필요한 디테일을 사전에 완벽히 준비하더라도, 아티스트 메이크업이나 의상 교체, 컨디션 등의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딜레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느 현장에서나 콘티의 중요성은 크다고 생각한다. KEY스태프(감독, 촬영감독, 조명감독, PD)끼리 동선이나 무빙, 특수효과가 들어간 메인 CUT에 대한 이해도를 완벽하게 일치시킨 뒤 신속, 정확하게 촬영을 이끌어야 한다)


당시 나는 프리 프로덕션에 진행된 모든 회의에 참석했었고, 그중에 막내였으며 샷의 크기나 카메라 연출에 대해 쥐똥만큼이라도 알고 있었기에 전문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리게 되었다. 원래 촬영 전날 푹 자고 세트장으로 출발하려던 계획이 있었건만... 역시나 계획은 늘 산산 조각나야 제 맛.. 출근 2시간 전까지 그림을 수정해서 스태프용 50부를 출력해갔다.


촬영장 테이블 곳곳에 놓여있는 내 콘티가 우스우면서도 퍽 뿌듯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작업이 끝나고 12월 정도에 감독님께 카톡이 왔다.

"xx야. 엔터 담당자님이 *팝크러시 선정됐다고 연락 왔네. 네가 고생 많았어"

(*미국 디지털 매거진입니다. 매 해, 올해의 뮤직비디오 TOP 25를 선정하는 매체입니다)


내가 한 업무들이 물론 메인은 아니었겠지만, 고맙다고 말씀 주시는 감독님 덕에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지속되어 온 것 같다.




<2> 팀의 위기, 나의 일생일대 기회 (PD를 맡게 된 계기)



보통, 예산이 큰 MV를 제작하는 덕션의 경우 당연히 해당 크루 안에 소속된 피디님이 계신다. 그런데 내가 이 팀에 합류할 즈음에는 원래 계시던 피디님께서 사정이 생기셨고, 그 자리가 공석이었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듯, 그래서 이센스 MV 1일 PD가 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본 작품의 경우 예산이나 세팅이 큰 작품이었기 때문에 전문 PD님을 외부에서 섭외해 진행하기로 했다.


피디님께서 훌륭히 진행을 잘해주셨지만, 워낙 촬영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질 않나. 모든 스태프가 딜레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딜레이로 인한 오버 차지가 일정 부분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손해는 덕션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을 때 감독님께서 '이번엔 우리가 해보자. 네가 해라!' 하셨고, 날 때부터 새가슴이었던 나는 '내가 생전 만져보지도 못한 큰 금액을 관리할 수 있을까' (용돈 기입장도 안 써본 사람인데..?) 벌벌 떨려서 딱 하루만 고민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고민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산 문제로 외부 PD님과 덕션, 미술팀 사이에서 줄다리기 같은 날 선 대화들을 내가 중간에서 '묻고-전달하고-이해가 안 가는 것을 되묻고' 하는 역할을 계속 진행해 왔는데, 그런 작업이 반복되는 것보다 그냥 내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그리고 무엇보다 큰 경력이 없는 나에게 이렇게 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나를 믿고 말씀을 주신 거니까, 모르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찾아보면서 남들이 예산을 2번 체크할 때 나는 10번 체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제안을 수락했고, Way V의 뮤직비디오 2편 제작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되었다.





※ 5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시리즈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을 연재하는 소기의 목적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나', 그리고 무슨 연유에 있어서든 (나와 같이) 오랫동안 스러져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 지나간 짧은 도전적 경험들 속에서, 오늘날의 긴 방황을 끝내줄 아이디어를 찾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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