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26
머리가 나빠서 몸이 고생한다던 지난번 글을 마지막으로 참 오래 쉬었다.
우선 매일 쓰는 것은 무리임이 판명되었다.
그러기엔 나는 많이 게으른 편에 속한다.
게으름에 더해 몰두하는 무언가가 하나 생길라치면
다른 것들은 거의 돌보지 못하고 만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는 방치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몰두했냐고?
시작부터 도안을 똑바로 읽지 않아 노력과 시간을 날려먹었다던 그것에 지난 2주를 쏟아부었다.
컬러가 너무 예뻐 '내가 할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은 스스로 예의를 차릴 수 있을 정도로만 하고 넣어두었다.
서술형 도안이라 글을 읽을 수 있으면 되었고, 중간중간 꼭 필요한 부분은 영상도 제공되었으므로 이런 팔랑팔랑 나비 같은 색상의 카디건을 어디서 또 만날까 싶어 무모하게 시작했던 일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카디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새벽 네시까지 마무리를 하고, 그날 저녁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기분 좋게 걸쳐보았다.
어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쁜 색이다.
그러므로 '뽕' 하고 나버린 검지 손가락의 구멍도 억울하지 않았다. 다음엔 또 뭘 뜨나 마치 중독된 것처럼 사이트를 뒤적였다.
잠시 잠깐 딴생각을 하며 한 코만 놓쳐도 초보로서는 수습이 어려웠다.
같은 부분을 푸르시오, 또 푸르시오 하면서 눈물도 찔끔 흘렸다.
성질 같았으면 진작 내다 버리고도 남았을 일이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내가 입고 싶어 뜨는 옷이었기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과 아이가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다 찌릿한 눈빛에 도망을 치고는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비록 어설프지만 완성된 그것을 보았을 때 힘들었던 만큼 더 감격스러웠다. 카디건 한 벌에 말이다.
세탁을 잘못해서 줄어들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이 들 정도로, 아끼고 아껴서 오래 입고 싶은 옷이다. 입을 수 있어 감사하고, 여러 번 푸르고 다시 뜨는 과정 중에 배운 것이 많아 또 감사하다.
실패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감에 나는 여전히 '초보'이지만, 스스로 '왕초보'라고는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뜨개질이 그러하듯 중학생 아이에게 '피아노'는 힘들지만 멈출 수 없는 취미다.
초등학교 1학년 시작한 피아노를 그해 겨울 코로나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피아노 학원은 아이의 일상에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가라니 기계적으로 오가는 곳이었을 뿐. 그러니 그만두는 것도 쉬웠고 몇 년을 쉬는 동안 단 한 번도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집에 있는 피아노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5학년의 어느 날 나는 다소 충동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더 가까운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착한 아들은 별로 내켜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상담을 받고 테스트 삼아 몇 년 만에 다시 건반을 눌러본 순간, 당사자도 나도 원장님도 조금 놀랐다. 아이는 피아노와 관련된 이전의 기억을 모두 '삭제'한 듯했다.
나름 충격을 받은 아이는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했다.
남들은 공부를 위해 예체능을 정리하는 시기에 우리는 다시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많았으므로.
그렇게 피아노는 아이의 새로운 배움이자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두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큰 의미를 두는 일이기도 하다.
(엄마는 가끔 협박의 소재로 피아노를 들먹인다. 효과가 아주 좋다.)
아이에게 숨 쉴 구멍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시 배우게 한 것이 정말 아이의 쉼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나름 인기도 누리고 있다. 그러니 여러모로 아주 칭찬할만한 결정이었다.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할 수는 없다.
잘한다고 해서 다 좋아할 수도 없다.
조금 부족해도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것, 몸이 힘들고 때로는 마음마저 구겨져도 온전히 자의로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는 그날을 아이는 무척 기다린다.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으니, 나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내일은 학교 축제날이다.
축제에서 연주를 하는 일은 이제 당연하게 되었다.
참가 신청을 하고, 연주할 곡을 정하고, 연습하고, 비록 틀려도 멈추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다.
역시,
좋아서 해야 오래간다.
좋아서 해야 힘들어도 버틴다.
그렇다면 이제,
공부를 좋아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