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오늘 생각 25

by 은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라고 하기엔 상황이 딱 떨어지지 않지만 그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누구 이야기냐면, 바로 나.

허당끼 넘치는 내 이야기다.



대바늘로 카디건을 뜨기 시작했다.

대바늘 뜨기로는 왕초보인지라 보통은 전체 동영상강의가 제공되는 제품만을 골라서 구입한다.

지금 뜨고 있는 카디건에는 일부 기법 동영상 링크만이 포함된 서술형 도안만 제공되는지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안되면 말지!'라는 쿨(한 척하는) 마인드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차근차근 설명을 읽으며 뜨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한 시간 반쯤 떴을까, 뭔가 잘못다는 강렬한 느낌이 온다.

'세 코가 남는다고? 안 남는데?'

아 이런.... 뭔가 잘못했나 싶어 모두 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다.

이번에는 정말 꼼꼼하게 신중을 기해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어라? 아까랑 똑같잖아!"

그제야 도안을 다시 확인해 본다.

1단부터 5단까지 각각 뜨는 법이 적혀 있고, 5단 설명 아래에 '4,5단을 총 6번 반복합니다'라고 쓰여있다.


그럼 4,5단을 7번 뜨라는 거 아닌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6번 반복하고 난 뒤 설명대로 세 코가 남아 던 장면이 보인다.

아... 총 6번이 그 뜻이었어?

나의 세 시간, 나의 손목...


수정 따위 할 수 없는 초보이므로 다시 실을 풀어내며 투덜댔다.

"이 도안이 문제인 거야? 아니면 내 문해력이 문제인 거야? 오빠 이리 좀 와봐, 몇 번 반복인 것 같아?"

남편까지 호출해 가며 한참을 씩씩거렸다.


한 시간 반이면 뜰 분량을 네 시간이 넘게 걸려 마치고는 다음 부분 영상 확인이 필요해 영상 QR코드가 있는 도안의 맨 첫 장을 펼쳤다.




이럴 수가...


첫 장에는 전체적인 진행과정과 함께 서술도안 읽는 법 등이 적혀 있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물론 이 부분을 그냥 지나쳤다. 빨리 시작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열어보면 될 거라고 생각다.


그런데 다시 펼친 그곳에, 떡하니 이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총-번 반복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경우, 위에 떠준 단을 포함한 횟수만큼 반복합니다.

결론은 총 7번이 아니고, 총 6번이었다.


도안은 죄가 없다.

죄는 나한테 있었다.

미안하다, 나 자신아.


이 한 줄만 읽고 시작했어도, 세 시간은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어깨가, 손목이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텐데, 허무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멍청함'의 문제도 아니고,

'문해력'의 문제라기에도 맞춤 맞지 않고,

'태도'의 문제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이다.


그날도 아이에게 지겹도록 강조했던 단어 '태도' 말이다.

내가 했던 말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내 목소리가 메아리치더라.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이는 기말고사를 치렀다. 사실은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기간 내내 아이가 공부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는 있으되 '열심'이라는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고 가볍게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을 도와줄까 하다가 가벼운 조언만 하고 그냥 두었다.


이때야말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해 결과가 어떻든 간에 깨닫는 바는 분명히 있을 거라며,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꾹 참아냈다. 아이의 방법이 맞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범위 쫙 펼쳐놓고 계획부터 다시 세워주고 싶었다!)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는 거라는 말만은 참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말이지 않은가.




'항상 안 틀릴 문제를 틀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꼼꼼하게만 확인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아이의 평소 실력에 비추어 볼 때 틀릴 수 없는 문제들을 틀려왔다.

어렵지 않은 문제였고, 당연히 맞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검토를 하니 실수한 부분을 캐치하지 못했던 거였다. 스스로도 굉장히 어이없어했다.


그래서 불거진 태도 이슈.

본인이 더 속상해했기 때문에 3절 정도까지 하고 마무리했던 것이 바로 내가 뜨개질을 시작하기 직전의 일이.


아이고... 나나 잘하자.

부끄러웠다.



"청소년아, 엄마가 글쎄 도안 다시 읽어 봤더니 앞에 쓰여있더라. 너한테 자만하지 말라고 꼼꼼히 천천히 하라고 그렇게 말을 해놓고 엄마가 똑같은 행동을 했네?"


자백인가 고백인가 자폭인가 싶은 안 해도 될 말을 찔리는 마음에 주절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수 있지."


어우... 얘는 꼭 이러더라 더 부끄럽게.

아이도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혼자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을 뒤로 뒤로 돌려 그 비슷한 말이라도 했던가 기억하려 애쓴다.


틀린 문제들에 정신이 팔려 백점이라는 다른 과목에 '잘했네, 수고했어'라고 딱 한 마디를 하고 넘어갔던 것만 생각났다.


이런... 나 잘못했네. 나빴네...


그런데 말이다.

다음에 이런 일이 겨도 아마 나는 잘못된 부분을 또 지적할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실수라고 얼버무려서는 곤란하니까.


그래도 다음에는 나도 한 마디 덧붙여 줘야지.

잘한 것부터 많이 칭찬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려고 세 시간을 고생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라고.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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