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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Sep 11. 2022

로컬살롱 세번째 영화 <원더>  : 시선과 안전지대

헬멧 밖은 위험해 / Editor. Nyeong

쉬는 날 늦은 아침, 친구들 톡방에 알림이 울린다. 띠-링. ‘다들 뭐하니’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방구석 천장만 찍어 보낸다. ‘야, 이불 밖은 위험해’ 방구석의 침대 한 켠과 폭닥한 이불은 아무도 헤쳐서는 안 될 조용하고 무해한 나의 안전지대다.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에겐 ‘헬멧’ 안의 세상이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공간이다. 어기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27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여전히 남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어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우주 헬멧과 코스튬으로 무장할 수 있는 할로윈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 어기는 홈스쿨링을 마치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안전지대를 벗어나야만 한다. 낯설지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조금의 희망과 설렘을 가지고 하루 이틀 버텨보지만 나와 친구가 되어줄 또래는 없다. 마치 학교 안 괴물이 된 듯 불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다. 학교와 친구는 어땠는지 가족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아무 말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어기는 간신히 헬멧 속에 숨어 괜찮지 않음을 표현한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어기처럼 외로운 하루를 보낸 누나 비아마저도 처음 헬멧 밖 세상을 만난 어기의 괜찮지 않음이 먼저여야만 한다. 이 하루에서 어기는 당연해서 알아채지 못했던 또 다른 안전지대, 가족이 드러난다. 여기까지 어기의 남들과 다른 지점이 내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은 점과 가족 모두가 어기를 위로할 때 나의 시선은 자꾸 비아에게 머물게 된 것은 우리 집에도 ‘남들과는 다른’ 지점을 지닌 구성원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 집의 남다른 구성원은 6개월 만에 태어나 뇌성마비를 진단받고 휠체어의 두 바퀴가 다리를 대신한다. 수 계산은 어렵지만(사실 이건 나도 어렵다, 문송합니다) 가방 끈은 대학원을 한 학기만에 때려치운 나보다 길다. 두 살 터울의 우리는 다정한 남매라기보다 여느 집처럼 한 집에 사는 엄마 아들, 딸 관계와 다르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주말이면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엄마 아들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그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는 내복만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났을 때,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똑같이 혼났고, 똑같이 자랐다.          

 


딸 비아와 엄마가 단둘이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 불쑥 어기의 학교에서 전화가 오고 엄마는 서둘러 학교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덩그러니 남겨진 비아. 우리에게도 차이가 있었다면 이런 것들이었다. 고3 입시생일 때도 반 전체가 해야만 하는 학부모 면담 한 번을 제외하고는 전혀 올 일 없던 학교를, 동생의 학교에서는 학부모위원을 자처하며 전부 계단으로 된 5층짜리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교육청이며 학교며 쉴 새 없이 드나들어야만 했던 그런 차이. 이런 부모님의 행동 차이는 사랑과 관심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슬픔이나 원망이 되진 않았다. 다만, 뭐랄까 – 화가 났다.

어딜 가고, 누구를 만나고, 하다못해 학교를 다니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에 엄마 아들은 싸워서 쟁취해야만 하는 일들이 수반되어야 하는 점이, 그 책임은 내 부모로 다시 돌아오는 일들이 화가 났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안 보이는 그 친구의 세계를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보통사람의 범주에 속해있는 것도 이상했다. 이런 차이는 도대체 왜,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이 고민은 우리 가족의, 그 친구의, 개인의 문제인지, 장애의 문제인지.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은 정말 ‘혼자’ 모든 걸 ‘전부’ 해낼 수 있는지 수많은 질문들이 떠다녔다.   


  ‘소수자의 문제를 불행이 아닌 불평등의 문제로 봐달라고. 불행한 장애인을 행복하게 해 주자는 식의 시혜적인 태도가 아닌 내가 누리는 많은 것을 왜 어떤 사람은 똑같이 누릴 수 없는지 묻자고. 개인의 행복과 불행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구성원 모두의 평등에 초점을 두고 장애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p212-213



보통의 사람들에게 안보이던 그 세계는 어기가 학교에 다니면서 점점 드러난다. 각자의 세계가 싸우고,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마주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교장 투시먼 “Auggie can’t change how he looks. Maybe we should change how we see(어기는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없어요. 아마 바뀌어야 하는 건 우리의 시선이겠죠.)”의 이상적인 교육방침 안에서. 그리고 영화는 모두가 서로에게 박수를 전하며 끝이 난다. 적어도 서로를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이 학교의 친구들은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어 줄 수 있다. 또 우리의 세계를 벗어난 다른 누군가에게도 안전하고 무해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나에게도 무해하고 안전한 무엇들이 생겨남을 알아야 한다. 장애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분노로부터 온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은 이로써 나의 경험과 시선이 만든 안전지대가 무한하게 확장되어 나에게도 닿았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별일 같지만 별일이 아니기도 해서 장애를 비롯한 소수자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 역시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는 다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과 응원만 전할 뿐이다.     


그리고 겪어 본 바 그중에 제일 별난 건 ‘나’다. 원 앤 온리.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전하며 고군분투하는 고유한 행성이 아닌지, 과연 평범하고 보통의 삶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 당신은 온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과연 서로가 서로를 만나고 엮이고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일이 정말 당신에게는 불필요한 일인지.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그저 바라볼 노력만 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을 고유한 행성으로 바라보고, 당신의 고군분투와 자전에 무해한 응원을 보내리라 전하며 앞선 박수를 보낸다.     



“제가 왜 이 상을 받는지 몰랐어요. 단지 5학년이 된 것뿐인데요.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저는 평범하지 않으니까요. 서로의 생각을 안다면 깨닫게 될 거예요. 평범한 사람은 없다는 걸. 그리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에 한 번쯤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음을. 제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누나도 저를 위해 항상 제 곁에 있어주잖아요. 아빠도 항상 저를 웃게 만들어주고, 우리 엄마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죠. 특히, 저를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music*

� Caroline Pennell – We’re Going To Be Friends

‘Safely walk to school without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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