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대신 아이들에게 맡겼더니, 정리가 시작됐다
하루는 놀이공간을 본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겁지겁 뛰어와서 말했다.
"선생님, 누가 이랬어요? 완전 폭탄 맞은 것 같아요."
작은 블록들이 바닥을 뒤덮고, 쿠션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책은 반쯤 뽑힌 채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실 이 풍경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까”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들이 치워줬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어질러도 다음 날 감쪽같이 깨끗해지는 마법의 공간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싶었다. 결국 그날, 나는 생각했다.
이건 아이들이 직접 해결해야 돼.
옆 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아이들에게 문제 상황을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놀이공간의 사진을 인쇄해 나눠주고 말해주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생각해? 너희 눈에 보이는 문제점들을 찾아보자."
아이들은 탐구안경 중 '형태' 안경을 끼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여기 블록이 엎어졌어!" "이 책은 책장이 아니라 바닥에 있어!" 하며 하나하나 표시해 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인과’ 안경을 껴 보자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조용하던 공간에 작은 속삭임들이 퍼졌다.
"맨날 같은 친구만 치우잖아." "놀고 나서 그냥 가버려서 그런 것 같아." "치우는 게 귀찮아서 그랬나?"
아이들은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기도 하면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나누었다.
그다음엔 모둠 친구들과 해결 방법을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게 아니라,
너희가 생각해 내는 거야.
아이들은 작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정리하는 곳에 이름표를 붙이자. 그러면 쉽게 찾아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맞아, 그림도 그려 넣으면 친구들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아."
"우리 반은 책 정리하고, 2반은 블록 정리 어때?"
"야, 그러면 2반이 너무 힘들잖아. 번갈아 가면서 하자."
그러다 갑자기 한 아이가 물었다.
"근데 선생님은 같이 정리 안 해요?"
갑자기 조용해진 공기 속에서 다른 아이가 대꾸했다.
"야, 선생님은 놀지도 않았는데 왜 같이 정리를 하냐?"
"나도 안 놀았는데 정리한 적 있어.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좋잖아. 같이 하면 금방 끝나니까."
아이들 사이에서 튀는 작은 불꽃을 보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도 너희를 돕고 싶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2반 선생님과 상의해서 알려줄게."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놀라운 건, 이 회의를 한 직후 쉬는 시간이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놀이공간으로 달려간 아이들이 부산스레 정리를 시작했다는 거다.
두 반 친구들 모두가 함께 말이다.
IB에서는 학생 주도성(agency)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voice, choice, ownership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voice), 스스로 선택하며(choice), 그 과정과 결과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ownership). 주도성은 단지 수업 시간의 토론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 모든 선택과 실천에서 자라난다.
교사가 정해준 규칙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실천해 보는 존재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IB의 학생 주도성 철학이고, 내가 믿는 교육의 방향이다.
교사로서 나는 종종 궁금해진다.
‘내가 하는 말이 아이들에게 진짜 닿고 있는가?’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도 묻고 싶다.
‘나는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는가?’
어른에게는 어른의 언어가 있듯, 어린이에게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서로 외국어를 쓰는 것처럼 오해하고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그 안에서 해석과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 들었던 저학년 놀이수업 연수에서 강사님은, 정리정돈을 못 하는 저학년 아이에게 “정리해!”라고 지시하는 대신 이렇게 접근한다고 했다.
얘들아, 선생님이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면서 정리해 볼까?
아이들이 정리하는 동안 선생님이 뒤돌아보면 멈추는 놀이 규칙. 아이들은 그 놀이를 함께 하고 싶어서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 선생님은 어린이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이의 언어로 말을 걸 때, 아이들은 웃고, 눈을 반짝이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 교실은 누구의 공간인가?’
어른이 설계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과 실천 담기는 교실, 주도성과 책임 안에서 성장하는 공간. 그것이 내가 꿈꾸는 교실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놀이 공간을 치우던 작고 귀여운 손끝에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