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의 급식시간,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

식판 위에 놓인 용기

by 이음샘

1학년 아이들이 급식을 먹는 시간은 매일 새롭다. 나는 그 곁에서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날 급식에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아이는 국에 떠 있는 채소를 보며 "이건 뭐예요?" 하고 호기심을 불태운다. 또 어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선생님 이거 매운 거예요?" 하며 몇 번이고 묻는다.


가끔은 계란말이 하나를 앞에 두고도 망설인다. "엄마가 해주는 거랑 생긴 게 달라요. 맛이 이상하면 어떡해요?"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 낯선 것에 대한 불안. 작은 식판 앞에 선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교사로서 오래도록 가지고 있는 질문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기꺼이 도전하는 존재로 자라는가?'




식판 위의 용기

처음 보는 반찬 하나를 먹어보는 일. 어쩌면 아주 사소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감당하려는 작은 용기가 숨어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삶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첫 경험들'을 떠올린다.


도전은 늘 불확실함을 동반한다. 실패할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고, 마음이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을 기꺼이 마주하는 태도는 결국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힘이 된다.




부모의 그림자, 아이의 마음

그런데 그 용기의 크기에는 놀랍도록 뚜렷한 차이가 있다. 어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시도하고,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냄새만 맡는다. 아이들의 그런 성향은 단순히 기질의 차이만은 아니다. 아이는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과 태도 속에서 세상을 향한 기본값을 설정해 간다. 특히, 이 무렵의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조심성이 많은 부모, 허용적인 부모, 통제적인 부모...

부모의 말투, 반응, 눈빛 하나하나는 아이에게 신호가 되고, 그것은 때론 도전을 이끄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때론 움츠러들게 하는 벽이 되기도 한다.


나는 보통 아이들이 하교한 후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에는 늘 반 아이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우리 반에 손에 작은 상처만 나도 금방 울먹이는 아이가 있어요. 아주 예민해서 친구가 무심코 툭 건드려도 서럽게 울어요."

그 말에 내가 조심스럽게 했다.

"그럴 땐 저는, 사실 달래주는 편은 아니에요. 확인해 보고 살짝 다친 거면 '괜찮아. 이 정도는 금방 나을 수 있어'라고 아이가 혼자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살짝 물러서곤 해요.”


또 다른 선생님은 여자아이들 사이의 갈등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반에도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다고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어요. 저한테 와서 펑펑 우는데, 아이들마다 생각도 다르고 감정도 섬세해서 중재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 이야기에 나는 작년,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보탰다.

"저도 작년에 3학년 담임하면서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노는 것을 힘들어하던 아이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생각과 마음도 변해. 그 친구도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 친구가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는 아니잖아. 이 기회에 다른 친구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 보자.'라고 조언하고 두 아이의 문제를 해결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함께 앉아 있던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샘, 솔직히 샘이 우리 엄마였으면 저 조금 서운했을 것 같아요ㅎㅎ 그런데… 샘도 그렇게 자라신 거죠?"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교실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 나의 반응, 아이들을 향한 조언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곱씹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게 자랐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말투와 태도, 그 안에 스며든 가치가 지금 내 교실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가정에서 익숙해진 언어와 정서가 교사가 된 나를 거쳐 교실이라는 또 다른 관계의 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는 아이들과의 하루하루 속에서 새롭게 마주하고 있다.


도전하는 사람, 그리고 탐험하는 마음

IB 프로그램의 궁극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학습자상(Learner Profile) 중 하나는 '도전하는 사람(Risk-taker)'이다. 새로운 상황이나 불확실한 문제에 맞서고, 두려움을 인식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 기꺼이 탐색하고, 실패에서 배우고,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내가 깊이 존경하는 최진석 교수님은 예전에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추격 국가는 되었지만, 선도 국가는 되지 못했는가?”

교수님께서는 그 이유 중 하나를 '탐험의 역사 부재'에서 찾으셨다. 늘 선진국을 모방하며 따라가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스스로 개척해 본 역사가 부족하다.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디딜 때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마치 DNA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퍼스트 펭귄이 되기를 주저하는 마음, 누군가 앞서간 길을 따라가며 중간만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안도감.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미래는 그 안도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기존의 문법으로 미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누구를 지향하고 흉내 내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세계를 탐색하며 개척해 나가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디딤돌로 삼는 힘이다.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

나는 교사로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주저할 때, 내가 어떤 말과 표정으로 그 앞에 서 있는지를.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그 작은 몸짓 앞에서, 내가 그 용기를 북돋우는 사람인지, 아니면 무심코 꺾는 사람은 아닌지를.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도전을 강요받는 환경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경험이다. 시도한 것을 존중받고, 망설임마저도 받아들여지는 시간. 나는 교사로서, 그 작은 시도의 순간들을 지켜봐 주고,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전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이 오늘도 또 다른 계란말이를 앞에 두고 망설일 때, 나는 그 곁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한 입만 먹어볼래? 다르지만 괜찮은 맛일 수도 있어.”

그 순간, 내 마음속에도 같은 말이 번져든다.


‘그래, 나도 한 걸음 더 내디뎌보자. 삶의 문 앞은 늘 낯설지만, 용기는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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