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이들은 왜 집중하지 못할까?

자아 고갈 이론으로 읽는 초등 교실

by 이음샘

교실 안에서 나는 종종 아이들과 작은 씨름을 벌인다. 뛰고, 소리치고, 잠깐 앉아 있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아이들. 어른들 눈엔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배움의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다.


처음엔 나도 그 에너지를 억누르려 했다. 주의 집중 신호, 반복되는 지시, 설명과 훈육. 하지만 그건 어느새 아이들과 나 사이의 ‘힘의 대결’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튀어나가려고 하고, 나는 나대로 수업의 질서를 지키려 했다. 그 대치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다 IB 학교에서 일하게 되며, 나의 수업관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린 학습자의 발달 특성과 성향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탐구가 출발해야 한다는 철학은 처음엔 조금 낯설기도 했다. 배움은 정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능동적 탐색이라는 말이,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와닿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수업을 조금씩 바꾸다 보니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고, 교실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변화 속에서 늘 남는 질문이 있었다.

왜 잘 따라오던 아이가, 어떤 날은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걸까?
왜 어떤 아이는 활동에선 눈이 반짝이지만, 설명만 하면 금세 시선이 흐려질까?


그러던 어느 날,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자아 고갈 이론(ego depletion theory)'을 접하게 되었다.

"자기 통제력은 에너지다. 그것은 유한하며, 반복적으로 사용할수록 소진된다."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 이완배 지음, 북트리거

책에서는 실험을 소개한다. 화면 속 글자를 무시하라는 지시를 받은 A그룹은 그 지시를 따르는 데 집중 에너지를 쓰느라 이후 판단과 결정에서 훨씬 더 피로감을 느끼고 반응도 떨어졌다. 반면,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은 B그룹은 비교적 안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문득, 교실 속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앉아 있어야 해’, ‘가만히 해야 해’, ‘말을 들으라’는 반복되는 지시 속에서, 그들의 내면 에너지는 이미 많이 소진되어 버린 건 아닐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의지 부족’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는 연령의 감당 범위를 넘어선 통제와 억제로 인해 이미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집중을 요구하기에 앞서, 그 집중이 가능한 내면의 여백을 먼저 만들어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1학년의 에너지, 교사의 오해


1학년 아이들은 유독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나는 그 활달함을 처음엔 ‘지도해야 할 문제’로 여겼다.

그런데 자아 고갈 이론에 관한 문장을 읽으면서 지난번 학교 선배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동의보감에도 나와. 어린아이들은 기가 성하다고.”

그래, 이건 문제가 아니라 자연이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처럼,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손으로 만지고, 부딪치고, 흔들리고, 그렇게 세상을 익혀간다. 배움은 언제나 ‘경험’에서 시작된다.




교실 설계는 곧 ‘에너지 설계’


IB 프로그램의 탐구 수업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구조를 제안한다.
IB수업의 기본방향인 개념 기반 탐구는 단지 지식 전달을 넘어,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다양한 학습 방법을 통해 지식을 구성해 가도록 돕는다. 나는 수업을 설계할 때 이 원칙 위에서, 아이들의 에너지가 흐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리듬을 만들어 보았다.

설명은 5~10분 이내로 짧게

30분 집중 시간을 넘기 전에 질문, 활동 등 수업 형태를 다양하게 전환

짝활동, 모둠활동을 적극 활용

책상에서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며 친구의 생각을 나누는 순환식 활동

교실 앞뒤와 벽면 공간을 모두 수업 공간으로 확장

쉬는 시간에는 마음껏 쉴 수 있는 공간과 도구 마련


조금씩 수업의 리듬을 바꾸자 아이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더 몰입하고, 더 길게 집중했다. ‘통제’가 아니라, 아이들 안의 에너지가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내는 일. 교실은 그렇게,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간다.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기다리는 일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존재다. 설명을 다 듣지 않아도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먼저 움직이며 배워나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움직임 속에 깃든 ‘학습의 에너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나는 교사로서, 그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에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고, 다시 채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단지 ‘산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던지고 있다. 그 탐색의 시작은, 종종 말보다 먼저 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 그 안에 숨은 배움의 리듬을 나는 제대로 듣고 있는가? 그들이 멈춘 것은 집중력이 아니라, 이미 소진된 에너지의 신호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나의 작은 결심을 담은 물음을 던진다.

“이 교실에,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움직일 수 있는 여백은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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