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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주 May 26. 2018

새로운 창세기를 쓰다

에두아르도 칵의 제네시스 (Genesis :창세기)

제네시스라는 단어는 그저 모 자동차 회사의 모델명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들어왔던 이름이지만, 그 뜻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무심히 지나갔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의 <Genesis>라는 작품이 그 이름의 의미를 찾아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자신의 작품인 'GFP Bunny'와 함께 있는 에두아르도 칵



칵의 <Genesis>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작품에 충격을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먼저, 작품의 이미지에 압도되는 경우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동물이고, 이미지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을, 이미지로 본다. 그러므로 첫 번째 충격은 바로 이 이미지에서 온다. 



그다음은 작품의 의미에서 오는 충격이다. 이것은, 사실 첫 번째 충격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오는 충격이다.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의 이미지성이 강력하지 않다면, 두 번째 파도인 의미에 의한 충격은 애당초 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관문을 통과한 작품은 우리에게 그 내용의 독창성으로 충격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새롭기 때문일 수도 있고, 끔찍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너무 진부해서 충격을 주는 경우도 있다. 



에두아르도 칵의 작품을 보고 내가 받은 충격은, 이 중 두 번째이다. 이 말은, 칵의 작품이 이미지로도, 개념으로도 모두 나에게 충격을 가져다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중 그 끝 맛이 더 길게 이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의미에서 오는 충격이다. 이미지는 휘발되더라도, 그 상처는 남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은 그 제목조차 그냥 낭비할 수 없다. 그래서 칵의 작품은 나로 하여금, 제네시스라는 단어의 의미마저도 찾아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창세기라는 말은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원래 세상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총칭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마치 기독교의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 버린 것처럼, 누구나 야훼와 그의 세계 창조를 떠올리게 된다. 



기독교 구약에 따르자면, 세상은 그들의 신이 7일에 걸쳐 만들었고, 그중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이 인간을 그 무엇도 아닌, 꼭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당연히 모든 창조물보다 인간의 위상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신에 있기 때문이다. 신이 만든 세상이니 신을 닮은 인간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신이 가장 먼저지만.



어쨌든 인간은 탄생부터 그 지위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니 버릇이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주어진 아이에게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소모했다. 그 결과 지구는 파괴됐고, 인간 역시 생존을 위협받게 됐다.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실 수 없게 됐고,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이가 위기감을 느꼈고 환경 보호를 외치고 있다. 

외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환경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정책에 개입하는 것에서부터 작지만 생활 속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안 하는 것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노력한다. 예술가 역시 예외 일 수 없다. 예술가는 그들의 방식으로, 곧 작품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임스 다이브는 <때늦은 폭풍우를 몰고 올 무더위>라는 제목의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조각해 대놓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 말하고, 대표적인 리사이클 아티스트인 톰 데이닝어는 버려진 담배꽁초로 예쁜 조개를, 병뚜껑과 플라스틱 용기와 같은 재활용품으로 성조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참여한다. 


James DiveHot With The Chance of a Late Storm, 2006Sydney, AustraliaFoam, Fibreglass7 x 5 x 1m


Tom Deininge, Shell (Cigarette butts found in beach parking lots around Newport)


Tom Deininge, Flag



에두아르도 칵 또한 예술 작품을 통해 환경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특히 생태계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는 위에서 제시한 예술가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말한다. 위의 두 작가가 자연파괴라는 결과에 집중했다면, 반대로 칵은 자연파괴에 대한 원인을 파고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야기시킨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인간은 어쩌다가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다, 바로 성경 구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다스리게 하라.
(창세기 2장 28절 中)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던 근본적 인식은 이 구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했던 이 선언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과연 이 선언은 지금도 고정 불변하며 유효한 것인가. 그는 이에 반기를 들며 ‘창세기’를 새로 쓴다, 독특한 방법으로. 물감과 붓이 아닌, 생명공학자가 사용하는 도구로 작품을 만든다. 그는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창조주가 된다. 이렇게 창세기를 새로 쓰겠다는 그의 발칙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럼 그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창세기를 다시 썼는지 살펴보자.

먼저 영어로 된 성경 구절을 모스부호의 점(·)과 줄표(-­) 기호로 번역한 뒤에 이를 자신이 만든 변환 법칙을 이용해 DNA의 염기(A, C, G, T)로 바꾼다. 성경 구절을 DNA 염기서열로 바꾸다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의 상상력만큼이나 그의 상상력 또한 놀랍다.  

Genesis Diagram, 1998–1999, photo © Eduardo Kac



그리고 나서 성경 구절 그리고 모스 부호, 그리고 DNA 염기서열은 화강암에 새겨진다. 

이는 세 개의 언어로 쓰인 로제타 스톤을 연상시킨다. 같은 뜻 다른 언어. 인간의 언어와 생명의 언어가 한 자리에 나란히 놓인다. 세상의 시작을 말하는 성경과 세상의 모든 생명을 구성하는 DNA 염기서열, 세상의 모든 비밀이 한 대 적혀있다. 그리고 그 비밀을 바탕으로 그는 다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Eduardo Kac, "Encryption Stones", 레이저 에칭 된 화강암 (diptych), 50 X 75cm, 2001



위 과정을 통해 나온 염기쌍의 DNA 배열로 합성 유전자를 만들고, 이를 박테리아의 유전자와 혼합해 합성 유전자와 자연 유전자가 결합된 새로운 변형 유전자를 만들어낸다. 




그는 이 유전자변형 박테리아를 페트리 접시에 담아 전시했다. 그리고 페트리 접시 위로 자외선이 내리쬐게 만들었다. 이 자외선의 세기는 전시관에 직접 방문한 관람객부터 인터넷을 통해 보는 사람들까지 조절할 수 있다. 여러 관람객의 손길을 통해 페트리 접시 위에서 증식하고 있는 형질 변환 박테리아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누구라도 이 생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 박테리아의 DNA 염기배열은 모스부호, 그리고 다시 영어로 번역된다. 





이렇게 창세기는 새로 쓰인다. 

사람들의 개입과 여러 우연들이 서로 뒤섞인다. 새로 쓰인 창세기는 어떤 의미가 될지 그 누구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난 10년간 거의 마흔 곳에 달하는 장소에서 새로운 창세기가 쓰였다. 


어떤 것은 명백하게 쓰인 ‘인간(MAN)’이라는 단어를 바꿔버린다. 

이젠 ‘인간(MAN)’의 자리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은 특권의 소유자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자연 지배에 있어 극단적 실현인 '생명 공학'으로 인해 인간은 그 지배권을 잃게 됐다. 

우리는 칵의 <Genesis>를 통해 더 이상 자연 지배에 대한 인간의 특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동시에 인간과 자연, 서로의 우열이 나눠지지 않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됐다는 것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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