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어머니.
-막내야, 나다. 경비실 앞이다. 내려와라.
뚜뚜뚜.
나는 미쳐 말할 틈도 없이 전화는 끊어졌다.
조금 뒤 다시 전화.
-막내야, 신호 대기 중이다. 5분 뒤에 1층으로 내려와라.
-어머니, 저 오늘 약속 있어서 밖인데요.
-뭐? 어디 갈 거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어머니 오실 줄 몰랐어요. 앞으로는 미리 연락 주시고 오세요. 저도 늘 집에 있는 건 아니에요.
-살림하고 애 키우는 사람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니! 찬호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집에서 영준이나 잘 돌보고 살림이나 잘 챙겨라!
또 본인 하실 말씀만 하시고 툭,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잠시 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어디 나갔어? 엄마가 집 앞에 갔는데 당신 집에 없다고 화내시더라. 그래서 그냥 집에 가신대. 내가 미리 연락 좀 하고 오시라고 말씀드렸어. 근데 왜 나한테까지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네..?
-아니, 어머니 왜 그러셔? 내가 당신이랑 영준이 키우려고 온 식모야 뭐야? 현관 비번 바꿔도 똑같잖아. 불시에 오시는 건! 그리고 당신, 중간에서 제대로 좀 하라고. 어머니가 뭐라 하신 걸 굳이 나한테까지 전달하면 내가 더 힘들지. 그럴 땐 그냥 당신만 알고 있어. 그게 나아.
-알았어. 그건 내가 생각을 못했네. 아무튼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엄마한테는 앞으로 연락하고 오시라고 했어.
남편의 전화를 끊고 나니 더 화가 났다.
‘어머니는 내가 정말 식모인 줄 아시나? 말투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사람을 후벼 파는 걸까.’
괜히 화를 삭이지 못해, 그날은 영준이만 피해를 봤다.
-이쁜 이모, 배고픈데 핫도그 있어?
-없어. 좀 있다 밥 줄 테니까 그냥 참아.
아직 나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쁜 이모”라 부르는 아이.
그날은 간식 달라는 아들에게 괜히 퉁명스럽게 굴어버렸다.
우리는 10월에 결혼했다.
어머니는 12월에 결혼하셨고, 남편이 스무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곧 1월,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보, 12월 25일은 엄마 결혼기념일이야. 안 챙겨 드리면 삐지셔.
-응? 아버님 돌아가신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무슨 결혼기념일이야?
-엄마는 늘 그날을 챙기셨어. 그리고 곧 생신이시고. 같이 챙겨 드리면 좋을 것 같아.
-그래, 우리 결혼하고 첫 생신이니까 내가 직접 차려 드릴게.
-정말?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겠다.
솔직히 어머니가 좀 과하다 싶었지만, 신혼 초라 나도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힘들게 혼자 자녀를 키워 오셨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이번 생신상은 손수 차려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기쁘게 받아주실 줄 알았던 그날 어머님의 결혼기념일과 생신상은 오히려 내게 잊을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안겨준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