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날은 지금 떠 올려도 마냥 좋기만 하네요. 내 이름을 기분 좋게 부르시는 아빠의 목소리에 후다닥 방문을 열었어요. 엄하신 아빠의 평소와 다른 밝은 목소리에 놀랐던 거예요. 아빠는 나일론 끈으로 묶은 책을 양손에 들고 계셨어요. 마루에 앉아 세어 보니 50권이 넘었는데 그렇게 많은 책이 한꺼번에 우리 집에 들어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우리 동네의 아이들 중에 내가 가장 많은 책을 가지게 된 거예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좋아 어쩔 줄 몰랐어요. 널브러져 있던 생기가 봄의 새싹처럼 싱그럽게 돋았어요.
살림하는 엄마는 형편이 아쉬운 것 투성인데 책을 잔뜩 들이니 퉁퉁거리셨지만 잠깐이었어요. 내가 너무 좋아해서였을 거예요. 마음이 하늘을 둥둥 떠다녔어요. 우리 동네가 깡시골이었어서 동화책이 흔하지 않아 더욱 그랬나 봐요. 가난했던 우리 집이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어요. 그 시절 쌀독에 쌀이 차 있고, 항아리에 김치가 가득하고, 광에 연탄이 잔뜩 쌓여 있을 때 느끼는 어른들의 마음과 같았을지도 몰라요. 아빠가 사 주신 책을 밤낮으로 읽었어요. 책이 집에 들어오고 얼마 못 가 다 읽어 치웠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러고는 처음부터 다시 읽고 또다시 읽기를 몇 번이나 더 했어요. 그때는 책 읽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다툼으로 집안이 발칵 뒤집혀 시끄러운 밤에는 이불 쓰고 잔뜩 웅크린 상태로 코가 꽉 막히도록 울었어요. 불쌍한 나를 친절한 부자에게 팔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 아이들이 한 번쯤은 해봄직한 상상을 하며 나를 다독여 재웠었죠.
"사실은 너의 부모님은 서울에 계신단다. 네 부모님의 형편이 어려워 널 우리 집에 맡겼었는데, 큰 부자가 되어서 널 데리러 온다는구나." 키워 주신 부모님에게 집도 사 드리고 땅도 사 드리고 통장 잔고도 꽉꽉 채워 드리고 비싼 승용차 안에서 슬픈 듯 손을 흔들며 유유히 떠나는 그런 상상 말이에요. 그렇지만 친 부모가 아니라기엔 아빠랑 걷는 게 너무 똑같아서 어떤 아저씨가 "혹시 니 아버지가 고재원이냐?" 하며 물을 정도였으니.. 가난 때문에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잠자리에 누워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장가용이었어요.
그러다 아빠가 사 주 신 책에서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를 만났고 그 이야기는 내 눈을 번쩍 뜨게 했어요. 나에게도 이야기 속의 키다리아저씨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어요. 키다리 아저씨가 시골에 없는 학용품, 큰 인형, 신발, 옷을 보내 주고 아닌 척하며 나타나 좋은 차도 태워 주고, 비싼 음식점에 데려가서 스테이크도 먹게 해 주고,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별장에도 데려가는 그런 상상. 그렇게 부족함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 후 얼굴이 희고 검정 슈트가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키다리 아저씨였다며 로맨틱하게 나타나는 상상을 하다 잠들곤 했어요. 그때는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결핍으로 생기는 마음의 빈자리를 책 읽기로 메꾸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가난도 가난이거니와 부모님의 잦은 충돌로 집안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으면 어린 나는 무서움과 불안으로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그럴 때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데리고 다니며 환기를 시켜 주었던 거예요. 책 속 문장을 길삼아 걷는 것은 불안 불안한 가정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의 일탈이었던 거예요. 책 읽는 동안에는 현실을 벗어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어요. 일탈이 책이라서 다행이었고 행운이었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책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어 줄 치고 끝을 접어 두터워진 책들이 책꽂이에 나란히 서 있으면 나의 호위병인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해요. 호위병 같은 게 아니라 마음의 호위병이 맞지 싶어요. 사람은 삶의 여러 방법을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을 통해서 선택해 산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책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의미를 갖는 걸 보면 맞는 말인가 보다 해요.
어린 시절의 상상 속에 살던 키다리 아저씨는 아니지만 인상 좋고 마음 예쁜 남편과 아이들과 살고 있어요. 두 아들과 딸이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를 좋아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키다리 아저씨의 이야기가 자주 잠자리에서 오디오로 흘렀어요. 그러면 나도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동화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들고는 했어요. 키다리 아저씨는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키다리 아저씨!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