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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Aug 13. 2017

쇼핑호스트가 꿈인 이들에게

#01. 나는 이렇게 시작했다. 

#01. 스물넷 최연소 쇼호스트가 되다. 


2004년 내 나이 스물넷 

뭣도 모르고, 뭐하나 가진 것 없던 그 막막했던 시절

학교 졸업하고, 잡지사에 대기업에 이리저리 있는 대로 없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더랬다. 

번번이 될 듯 안 되는 실패의 잔을 연거푸 들이켜고 있을 때

우연히 직업 공고 사이트에 'LG 홈쇼핑 쇼핑호스트 모집'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 LG홈쇼핑 (지금의 GS홈쇼핑)


아, 잘은 모르지만, 방송에서 물건 장사를 하면 재밌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도 궁둥이 붙이고 앉아있는 걸 무척이나 괴로워했던 나의 성향상 9 TO 6 보다는 역동적인 방송이 더 맞을 거란 내 맘대로의 해석으로 일단 서류를 넣었다.


지금이야, 재능과 끼만 있다면 대학 갓 졸업한 무경력자도 호스트로 뽑지만, 15년 전만 해도 아무런 방송 경력 없이 쇼핑호스트가 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 나와 같은 시기에 동기로 입사한 호스트만 해도 나보다 10살 많은 아나운서 출신이었으니, 당시 나의 합격은 그야말로 우연인지 행운인지 신기한 일이었다. 




내 입사 동기 박정훈 호스트 

MBC 아나운서 출신, 입사 이후 14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우고 오누이처럼 잘 지낸 걸 보면 동기 하나 잘 만난 건 분명하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홈쇼핑 회사에 의지가 되는 좋은 친구는 방송 생활의 큰 힘이자 활력이 되어 준다.                                                                                  


2004년 내가 입사할 당시의 LG 홈쇼핑의 호스트 전형 기준은 2년제 대학 이상 졸업에, 학과 제한 없고, 나이 제한 없고, 심지어 방송 무경력도 상관이 없었다. 단 서류 통과한 합격자에 한 해, 국어, 상식 시험을 치렀다. 

이렇게 뽑았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 해에만 윗선(본부장 급 이상 방송 관련 임원들)에서 뭔가 아나운서 같은 지적이면서 똑똑한(?) 호스트를 뽑고 싶어 했다고 했다. '국어랑 상식 잘 치면 똑똑한 건가??' 아무튼, 해볼 만한 게임이었다. 


1차 서류는 무사히 통과했다. 서류상 다른 대졸 신입사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텐데, 아니, 오히려 더 미흡했을 텐데, 아무래도 자기소개서를 좋게 봐주신 듯싶었다. 

난 당시 99학번이었고, 누구나 기억하는 97년 IMF 이후,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정리하셔야 했기에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정말 처참한 상황이었다. 

대학은 갔지, 학비는 벌어야 하지, 레스토랑 서빙부터 초등학생 피아노 가르치는 알바까지 그때부터 생존을 위한 돈벌이가 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학비도 스스로 되도록 해결하려고 했다. 또 알바로 번 200만 원으로 유럽 10개국 20개 도시를 거의 반 걸인 상태로 여행했던 경험들도 자기소개서에 담았다. 


1차 서류 통과 뒤 치러야 할 국어와 상식 시험!!

곰곰이 생각했다. 국어와 상식이라~~ 내가 만약 시험 출제자라면 어디서 시험문제를 낼까? 

어디가 국어, 상식 시험을 입사 기준으로 많이 삼을까?


공무원 시험과 언론사..... 아! 그래 이걸로 하자~~~!!!


족히 500페이지는 넘어 보이는 노란색 전화번호부 같은 보기도 겁나는 공무원 국어와 공무원 상식 시험 기출문제집을 사고, 온 맘과 우주의 에너지를 모아 미친 듯이 풀고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1차 서류 합격 발표 후 2차 시험 준비시간이 거의 2주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미치도록 풀고 머리에 구겨 넣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당당히 서류 통과~~!!! 


자, 이제 카메라 테스트가 남았다.


카메라가 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

대체 내가 가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진짜 나는 무대뽀 그 자체였다. 


대학도 방송 관련 학과도 아닌, 경영학 전공이니

카메라 앞에서 설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속으로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뛰었지만

걱정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그냥 뭐, 안되면 또 다른 길 찾아봐도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단 '고~~~!!!'

못 먹어도 '고~~~~~!!!!' 다. 


스물넷 겁이라곤 1도 없는 젊은 청춘은

그렇게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그저, 쉽게 생각하고자 했다. 

저, 카메라가 사자도 아닌데 내가 뭐 잡아 먹히기라도 하겠어?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는 거지? 내가 잡아 먹히지 말고 내가 잡아먹어 버리자~~!!!

까짓 것 그냥 해~~!!!! 난 정말 무서울 게 없는 나이였다. 그리고 심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는 나를 이 길로 이끌었던 것 같다. 


제품 설명 하나씩 5분 정도 준비해 오라는 미션에 나는 그냥 화장품을 하나 선정해서, 그런대로 또박또박 말했다. 근데 문제는 5명이 한 조로 만들어진 시험장에서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제품 설명 못 하는 이는 없었다. 

아, 이래 가지곤 망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저기 할 말 있습니다.~~!! 저 춤 잘 춥니다." 

시키지도 않은 장기자랑을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난 내 인생의 운명의 3분을 얻었다. 

당시 '하리수' 씨가 가장 핫한 연예인이었기에, 나는 그냥 하리수 성대모사를 하면서 불편한 치마 정장을 입은 채로 아주 어색하게 웨이브 댄스를 춰가며 노래했다. 


앞의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의 기막혀하는 표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쌀하게 화끈하게 '그냥 나를 보여주자.'.....................

난 남들이 하지 않았던, 운명의 3분을 따냈고, 


그리고 한 달 뒤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리하여 나의 쇼핑호스트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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