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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Sep 14. 2017

쇼핑호스트 후배들에게

지친 청춘들에게 


누구는 아파야 청춘이라고는 했지만, 너무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으면 한다. 

아플 때 대일밴드라도 붙여줄 선배들이 그대의 옆에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넘어질 때 보듬어주는 선배들이 있어 14년을 버티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경험과 지혜의 깊이는 '오래 있어 본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시간의 깊이다. 젊다고 자신할 것도 아니고, 나이 들었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다. 

청춘은 푸르러서 아름답고, 황혼의 아름다움은 저녁이 되어야지만  알 수 있다. 선배들 어깨에 기대어, 때론 쉬어갔으면 좋겠다.

너무 긴장해서, 그래, 온몸의 마비가 오는 건 어쩌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다.

쇼핑호스트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카메라 앞에 서서 겨드랑이 축축해지도록 진땀 빼고 나왔던 기억, 나 또한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피디, 앰디, 업체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스스로 못난 놈이라 자책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여서 '내공'이란 것도 생기고, '개똥철학'이라는 것도 생기는 것이니깐, 너무 노여워 마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1. 깡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거다.


그 생기 발랄하던 후배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배님 저 잘 해 볼게요.라고 했던 후배들이 입사하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해동 덜된 동태처럼 흐물거린다. 지쳤을 것이다.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아니고 새벽 4시에도 출근하고,  밤 12시 새벽 2시에도 퇴근하니, 뭐, 이건 박카스를 달고 살아도 피곤은 너와 나의 친구일 것이다.  피곤한데 운동까지 하라고 하면, 어떤 후배들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되묻기도 한다. 다, 널 위해서란다. 아가야~~

10년 넘게 이 뒤죽박죽 한 스케줄에서 과로로 쓰러지지 않고 잘 버티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된다. 하다못해 아침에 눈뜨면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몸에 피가 잘 돈다. 어떤 날엔 하루 2시간을 자기도 하고, 방송이 없는 날엔 하루 10시간도 잠으로 귀한 시간을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몸이 제정신 일리가 없다. 맑은 정신으로 방송하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려면 건강한 체력부터 만들기 바란다. 누구는 며칠 만에 감기가 낫는다지만 우리같이 매일같이 시차 적응해야 되는 쇼핑호스트들에게는 감기는 일 년 내내 따라다니고, 성대 결절,  요통, 디스크, 하지정맥, 만성 두통,  이런 병들 한 두 개씩은 다들 몸에 붙이고 살아간다. 


깡다구는 어디서 나오는가? 건강한 체력과 맑은 정신에서 나온다. 세트가 무너져도, 조명이 터져도 올곧은 자세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것도 파리가 콧잔등 위에 앉더라도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정신력도 다 체력에서 나온다. 그대, 부디 건강하시기를.....

젊다는 건 무언가? 40이 되더라도 50이 되더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젊은이다.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늙으면 그들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들어올 때의 패기 넘쳤던 그 모습, 그 마인드 처음 마음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의 방침이 그러해서 더 이상 시도를 못하겠어요.라고 얘기하는 후배들을 많이 본다. 아이디어가 너무 좋은데, 위로 올라가기도 전에, 팀장급에서 "이거 되겠어? 괜히 돈만 쓰고 그냥 하지 마."라고 얘기한다. 계속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려는 후배들의 의지를 꺾어 놓는다. 그럼 난 그렇게 말한다. 돈 많이 안 쓰고 아이디어로 다르게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제작비가 부족하면 멋진 생각으로 방송을 바꿔보자고.... 상황을 탓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더 잘할 수 있는 '무엇'을 발견해 내는 것. 변화를 겁내지 않는 것이 '젊음'이다. 


"언제까지 시키는 것만 하고 살래?"


모 방송국에서 피디로 아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후배가 있다. 그 회사 윗 분 '어르신'들이 워낙 '고지식'하셔서, 엄청 점잖게 방송을 해야 된다고 했다. 한 번은 아침에 프로그램 끝 인사 때 진행자들이 모두 손을 흔들면서 "여러분, 내일 또 만나요."라고 하였단다. 그런데 글쎄 방송이 나간 그 날 피디는 욕한 바가지를 아침부터 먹었단다. 이유는 손을 흔드는 게 점잖치 않아서..........

80년대 태어난 나도, 사실 90년대 생 후배들과 일하면 가끔 '세대 차'를 느끼곤 한다. 허걱 할 때도 많다. 하나, 그 들만의 새로운 생각들이 나를 자극한다. 그래서 난 어린 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즐겁고 좋다. 제발 나를 자주 자극시켜줬으면 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논술의 비중이 이렇게 높지 않았다. 수능은 전부 5지 선다니깐 답은 다섯 개 중 하나지 그 외의 것은 다 틀린 거다.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버르장머리'없는 짓이며, 틀린 답이며, '왜'라고 질문을 하는 것은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다. 하물며, 아침마다 교장선생님의 조례를 한 시간씩 들으며, 가던 길도 멈추고 애국가가 나오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던 그 시절을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생각이 우리와 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정말 서로 안 맞는데 서로 안 맞는 게 당연한 거다. 그럼 무조건 그들에게 맞춰야 하나? 

오 노~~~!!!!! 멋진 생각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자. 그렇다고 그대들이 미친 척하며 영 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진 않으리라는 걸 믿기에..... 팀장 하나 설득 못하는데, 고객 설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 -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새로움, 신선함, 도전...... 우린 영업맨이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하지 말자. 그대가 입사할 때 가졌던 그 '깡'으로 은퇴하는 그 날까지 더 나은 방송을 만들길 응원한다.


2. 나는 무슨 색?


따라 하지 마라. 선배 호스트들의 좋은 점은 본받되, 자기 속에서 재 해석하라. 어떤 호스트는 톡톡 튀는 게 매력이고, 또 누군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게 좋고, 또 어떤 이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어떤 게 더 좋고 나쁘고는 없다. 후배들이 선배들 방송을 오랫동안 모니터링하다 보면 이런 현상이 생긴다. 000은 정석남 호스트 + 이상권 호스트이야. 000은 정윤정 호스트+ 김상희 호스트야. 

당사자가 누군지 선배들은 알지만, 본인에게 얘기를 잘 못해준다. 얘기해줘도 들을 준비가 안 된 후배들에게 선배의 가르침은 교훈이 아니라 질책으로 들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엄마 구두를 신고 현관을 런웨이 하는 그런 느낌? 맞지 않는 옷은 안 입는 게 좋다. 

그리고 자기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후배들 중에는 '모니터링'받는 게 무서워서, 한마디로 선배들에게 욕먹을까 봐 졸아서, 모니터링 부탁을 아예 안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후배는 내가 것들이라고 한다.ㅋㅋ

이 놈의 똥강아지들은 일, 이년 차 밖에 안된 것들이라도 본인 방송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모니터링을 안 한다. 부끄러워서 자기 방송을 다시 못 보겠단다. 더 부끄러운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속에서 천불이 난다. 저것들이 공부는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반성은 하는지.......

예전엔 후배들을 앉혀놓고 같이 모니터링도 해줬는데, 이젠 그럴 기력도 딸린다. 그래서 '제발, 욕해주세요 선배님.'하고 찾아오는 후배들에게만 '욕'을 해준다. 내 욕을 기꺼이 먹을 준비가 된 후배들에게만..... 

타고난 자신의 색에 공부와 성찰로 더해진 색은 그 누구도 뺏어 갈 수 없는 '나만의 색'이 된다. 모방하기도 힘들다. 

후배들에게 네이버만 뒤지지 말고, 이 책 어때, 저 책 어때, 패션을 알고 싶으면 이 작가의 섬유 이야기가 괜찮아, 아동책은 판매하는 책만 보지 말고, 아동심리와 북유럽 엄마들의 교육관을 알려주는 000이 책이 도움이 될 거야.라고 백만 번 얘기해주면 내가 권해주는 책을 표지라도 들춰보는 후배는 정말 정말 정말 드물다. 

좋은 책을 선배가 대신 읽고, 가시 다 발라서, 살코기만 입에 넣어주길 바라는 후배들도 많다. 쯧쯧..... 

선배님, 먹고사니즘이 문제라, 저 오늘 애 본다고 독서할 시간이 없어요. 저, 어제 막방 하느라고 코딱지만큼 잤어요. 

저 1년에 책 한 권 보기도 벅차요. 그래 그렇게 살거라.

지금 당장 고전이 그대의 반찬이 되어 줄 수 없고, 지금 당장 인문학 책이 그대의 월급을 만원도 올려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으로 밥을 먹고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제발 '보약 같은 책'들을 가까이하길 바란다. 후배들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3/4을 잃어버린다. - 쇼펜하우어 


3. 말랑한 게 좋아.


"예 자신 있습니다." "예 선배님~~!! " "그런데 말입니다......"

"야, 너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냐?" 

"아닌데요......"

"나 방금 고막 터지는 줄 알았어."


잔뜩 군기가 잡힌, 후배들은 사석에서도, 방송 안에서도 제대로 놀 줄 모른다. 심지어 술이 몇 잔 들어가도 이놈의 각 잡힌 인간들은 어찌나 딱딱하게 얘기하는지, 사실 선배가 묻지 않으면 질문도 안 한다. 그저 이 불편한 선배와의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일 것이다. 

사람이 불편하다. 옆에서 같이 진행하는 선배도 불편하고, 카메라 감독들이 헛기침만 해도 어깨가 뻣뻣해지고, 어색하기 짝이 없고, 게스트도 어렵고, 고객은 내 속에 처음부터 없었고, 모든 게 어렵고 불편하다. 그런 마음으로 방송에 들어가면 보는 고객들도 무진장 불편하다. 

내 방송을 열심히 모니터링하시는 양가 부모님들은 오늘 내가 완전 신입을 데리고 들어갔는지, 좀 연식이 된 후배 놈을 데리고 들어갔는지 단박에 알아보신다. 잘 못 보던 얼굴이라 아시는 게 아니라, 목소리랑 제스처만 대충 봐도, '어색'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마음의 힘이 잔뜩 들어가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손짓, 몸짓에도 힘이 들어간다. 결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줄 수 없다. 그대가 호스트이기에, 그대 자신이 편안한 상태가 아니면 그 집에 놀러 온 게스트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손님 초대해놓고, 불편하게 만드는 꼴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노력해서 더 빨리 편해지도록 더 많이 접촉하라. 선배와 접촉하고, 고객과 접촉하고, 스텝들과 접촉하라. 

접촉의 빈도, 시간이 많이 질수록 마음이 좀 더 말랑해질 것이다. 


야, 누나가 그랬잖아. 언니가 이렇게 해볼게 그럼 지윤이는 이렇게 해봐...라고 얘기한다. 그들과 말을 트는 처음부터.....

내가 자꾸 선배가 하는 것처럼 하라고 호칭을 '선배'라고 나 스스로도 사용하면, 듣고 있는 후배도 말하는 나도 '불편한 대 선배'가 되지만, 사이를 말랑하게 해주는 건 만남의 빈도 수도 중요하겠지만, 호칭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들이 술자리에 가면 상무님도 '형'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술을 안 마셔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싶었다. 

재밌는 건 난 10년 넘게 '고객'이라는 호칭을 방송 중에 쓰지 않았다. 이유인즉은, 그냥 이것도 어찌 보면 누구는 똥 철학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난 고객을 '고객'으로 대하게 되고, 상대방은 나를 '영업인'으로 대할 것 같아서이다. 실제 맞는 관계일 수도 있으나, 내가 '장사'를 한다라고 생각하고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이다. 그저, 외숙모, 큰엄마, 아버지, 동생, 내 친구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나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방송하고 싶기에 호칭에서부터 '고객'이라는 단어를 빼고 방송한다. 고객 대신, 우리 ~~ , 어머니~~~ 뭐 이런 말을 더 많이 쓴다. 말랑 말랑하게~~ 누구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게.....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몸의 힘을 빼는 거다. 

긴장을 해서는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다. 내 몸의 경직성이 커질수록 타인은 물론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천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고, 여러분이 릴랙스 된다는 뜻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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