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은정쇼호스트 Sep 14. 2017

스무 살 청년 홈쇼핑에게 묻다.

될 줄 아셨던 거다. 

될 거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빵'터져서, 대박 난 상품이라 했다. 

협력사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업체 대표는 홈쇼핑이 처음이라고 했다. 

미국 홈쇼핑에서 엄청나게 잘 나갔다고 했다. 손으로 돌리면서 음식을 다지는 일종에 믹서기 비슷한 걸 가지고 오셨다. 

주방 용품에 대한 '촉'은 누구보다 예리 했던 나였다.

제품은 누가 봐도  어설프고 허접했다. 잘 팔 자신이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팔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테스트를 해보니, 영~~~ 아니올시다 였다. 


2차 미팅에서 난, 업체와 앰디가 있는 자리에서 상품의 하자를 지적했다. 이렇게 삐뚤빼뚤하게 썰 거면, 차라리 칼을 꺼내서 썰겠어요. 

당근 오이 이거 안 되잖아요. 아무리 가격이 좋아도,  다시 보강을 하던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업체와 앰디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처다 보았고, 앰디는 잠깐만 기다려 보시라며 회사 앞 마트에서 오이랑 당근을 수북이 사와,

회의 시간에 본인이 가지고 온 상품은 하자가 없다는 걸 호스트에게 증명하려고 했다. 아........... 뭐........ 그래도 영, 성에 안 찼다. 

오이가 잘리긴 했지만 서로 뭉개지면서 나중에는 이상한 모양으로 떡이 되고, 당근은 일부러 부러뜨린 것처럼 날카롭게 부서졌다. 


앰디님~~ 우리 이거 파실 건가요? 

네..... 호스트님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다는 건 무슨 의미??? 


정말 팔고 싶지 않았다. 한 번만 방송해 달라고 하셨다. 그날 난 영혼을 집에다 빼놓고, 출근했다. 

무미건조하게 그냥 제품을 보여주기만 했다. '좋아요'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품 자체도 매력이 없는데, 호스트의 감동이 없으니 상품 매출은...... 반토막 도 못했다. 아니 10% 정도 달성했을까? 

완전 제대로 망한 거였다. 

방송을 마치고, 리뷰하는 시간에 업체와 앰디는 오히려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미안했다. 못하겠다고 더 강하게 말해야 했던 것을...

시간을 두고 고쳐보자고 더 고민하고 협의할 것을.....   10% 매출 기록은 두 번째 기회란 없다는 의미다. 


앰디가 나중에 살짝 나를 불렀다. 차나 한 잔 하자는 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업체가 홈쇼핑이 처음인데 너무 하고 싶어서 광고료를 내고 들어왔던 모양이다. 10억 정도 대출을 냈는데, 집까지 담보로 잡아서 완전 무리수를 두시면서 이 상품에 올인하셨다고 했다. 앰 디도 처음에 엄청 뜯어말리고, 좀 더 시장조사를 해보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으셨다고 했다. 

미국 홈쇼핑 화면을 보여주면서, 엄청 잘 나갈 거라고 걱정 마시라고, 오히려 앰디를 안심시키며, 수입부터 하셨던 거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죄송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수입하기 전에 홈쇼핑 입점의 애로 사항에 대해서, 현재 주방 트렌드에 대해서, 이것 저것 설명을 좀 드렸다면 집까지 날려 먹는 일은 없었을 텐데..... 협력사 대표의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다른 나라에서 잘 나간다고 한국에서 늘 먹히는 건 아니다. 

그 잘난 구글도 한국 사람의 네이버 사랑을 꺾을 수 없는 거고, 

월마트의 위력도 이마트 저 마트 입맛대로 다양한 한국 마트 시장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진 못했다. 


수입 제품을 진행하는 업체라면, 수입하기 전에 홈쇼핑 앰디, 피디, 호스트와 시장에 대한 고민을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 한 번 수입된 제품은 그 나라에 다시 돌려줄 수 도 없는 노릇이니,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누구는 홈쇼핑에서 매년 천 억씩 번다고 하지. 한 시간에 몇 십억씩 버는 건 일도 아닌 줄 안다. 

시대와 맞아떨어지는 상품, 상품을 극도로 빛나게 만져줄 호스트, 피디, 앰디의 기획력, 그리고 적당한 운 몇 스푼.

시간당 수십 억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곳이 홈쇼핑이다. 


십 년이 지나도 잊기 힘든 날....

그 날은 협력사 사장님이 세상을 등지신 날이다. 

내가 신입 시절일 때 일이다. 꽃게장을 만드는 업체였다. 잘 나갔더랬다. 한 번에 만 세트도 팔았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꽃게에서 뭐가 나왔다는 게 기사로 나갔다. 이 업체의 꽃게가 아니었는데도 불매 조짐은 무섭게 번졌고, 십만 개씩 준비해뒀던 꽃게는 폐기 처분해야 했다. 냉동으로 보관한다고 해도 한 달에 몇 억씩 나가는 창고 보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대표님은 세상과 이별하셨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오해로 사업이 틀어지거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서, 숨통이 막히는 경험들도 하게 된다. 

분장실에 늘 초콜릿을 뿌리고 가시는 사랑스러운 중년의 여성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고 김영애' 선생님. 

나와는 방송 인연이 닿지 않아 같이 방송을 진행해본 적은 없지만, 분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눈인사를 건네주시던 분이셨다. 

누구든 와서 먹으라며 맛있는 간식을 분장실에 잔뜩 풀어놓고 가셨던 큰 엄마 같은 분이셨다. 

황토 솔림욕 사건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선생님이 인생을 다 바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계발하시고 노력하셨던 뒷 이야기들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잘 나가던 황토 솔림욕을 하루아침에 지옥 불로 밀어 넣었던 건 모 방송국 프로그램. 

결국, 나중에 그 프로그램에서 주장했던 내용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실은 황토 본연의 좋은 성분이었음이 검증되면서,  어느 정도 억울함은 풀렸겠지만 이미 사업은 끝이 났고, 선생님은 병을 얻었다. 

선생님께 오명을 씌웠던 피디는 사과는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깟 뜨거움 즈음이야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으로, 불나방처럼 홈쇼핑에 모여든다. 

정작 그 뜨거운 맛을 보게 되는 날이면, 돈과 건강을 잃기 쉬운 곳이 홈쇼핑이다. 


난 업체 대표님들을 만날 때마다 늘 말씀드리는 게 있다. 사장님, 홈쇼핑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한 방에 훅 갑니다. 

사업 기반을 넓히세요. 시장을 다양하게 가지세요. 홈쇼핑에서 버는 수익은 빵일 수도 있고, 백 일수도 있어요. 알 수 없는 겁니다. 


참, 어렵다. 방송만 하고 끝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안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얽힌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임 있는 자세'에 대해 고민한다. 같이 잘 살아보고 싶다. 도움의 손길이 되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적어도, "이놈의 홈쇼핑사에 입점했는데 손해만 봤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난 마음이 무겁다. 

이제 홈쇼핑은 20여 년의 역사에 접어들게 되었다. 한 참 의욕 넘치고 팔팔한 스무 살 청년이다. 

이십 년 동안 사람을 겪으면서, 우린 어떤 자세로 이 업을 이어나갈 건지 같이 고민하고 싶다. 그저 사람을 숫자와 돈으로 보는 순간

우린 협력사들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스무 살 청년 홈쇼핑에게 묻는다.

과연 우린 동료  직원들과 협력사에게 '책임'을 다했는지

과연 우린 그들의 '인생'의 무게를 함께 나누었는지를..... 


















매거진의 이전글 쇼핑호스트 후배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