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미의 끝
리틀 포레스트 우리나라 버전은 몇 년 전에 봤었는데 그때도 영화가 아기자기 참 아름다워서 영화 세트장이 있다는 경북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백두대간 자락의 험준한 곳들은 아직도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다는데. 그런 곳에 여행이라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원조 격인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을 우연히 봤다가 아름다운 영상에 너무 깜짝 놀랐다.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여러 편 봤지만 이건 압도적이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똑같고 사계절 편으로 나누어서 각 1시간 정도 분량으로 찍었는데 대체 여긴 또 일본의 어느 시골에서 촬영을 했는지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심지어 촬영 방식도 궁금해졌다. 영화라기보다는 자연 마을 다큐멘터리 느낌이 더 강했는데 이게 광각인지 드론 촬영인지 화면을 멀리서 아주 넓게 잡으면서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야말로 장엄하게 담았다. 그 풍경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와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영화는 계절의 변화, 제철에 나고 자라는 채소와 과일들, 농사-수확-저장-그리고 각각에 어울리는 요리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버전에 비해 더 담담했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는 최대한 절제하여 양념처럼 조금만 얹었고 거의 대부분이 계절과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화면을 담아낸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를 극도로 짤막하게 집어넣은 것이 더 무게가 있었다. 뭐랄까, 하이쿠 같달까.
지난번 리스본 책방에서 하이쿠 모음집이 있길래 우연히 열어봤었는데 단가 라는 단어에 걸맞게 이건 우리나라 시보다도 더욱 짧게, 약 3줄 정도의 문장에 계절의 아름다움과 시인의 단상을 함께 담은 것이었다. 필요없는 것은 극한까지 덜어내어 완전한 핵심만 남긴 여백의 미. 굉장히 일본적이었다.
그런 특성 때문에 왠지 이 영화는 가끔 머리를 쉬고 싶을 때 또 보게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하고 본질에 충실하게 그리고 몸을 많이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무래도 시골 생활은 이 영화에 담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내 손으로 길러낸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에 대한 로망은 텃밭 정도가 현실 타협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