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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Oct 06. 2023

수업을 하고 싶어요

1. 경력단절 한국어 강사가 다시 수업을 하게 되기까지 (1)

  수 해 전 결혼을 하고 이곳 작은 도시에 와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이 도시에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결혼이 예상치 못한 길을 열어줬다.

  아이를 출산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도시에서 양육에 온 힘을 다 하던 나는 다시 일이 그리워졌다. 걸음만 겨우 걷는 아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고 흔히들 말하는 다문화센터(현재의 명칭은 가족센터이다)에서 중도입국청소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중도입국청소년'이란 단어는 전공 수업에서 종종 등장하던 낯설지는 않았으나 사실 내 관심 밖의 단어였다. 외국에서 대학교, 사립 고등학교 등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던 나는 당시 TOPIK(한국어능력시험)에 최다 인원을 고득점 합격시키기도 한 열정의 선생님이었다. 유쾌하고 다양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고, 더러 다른 반의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듣기 원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 커리어라면 중도입국청소년이라는 낯선 아이들도 내 편으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라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설렘이 지난 경력 단절의 간극을 금세 메울 거라 나는 확신했다.

  수업 첫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나를 소개하는 선생님의 달뜬 목소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모두 조용했다. 어색함을 매우려 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과 눈 맞춤을 하려 했지만 아무도 나와 눈을 맞추는 이가 없었다. 기존에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두 반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다른 강사 한 명을 더 고용한 거였고 그게 나였다. 그 선생님과 수업 방향이라든지 교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라며 직원분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 선생님도 나에게 벽을 세우고 곁을 내주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겠지만 뭐든지 알아서 하라는 듯이 모든 질문에 단답형으로 일관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로 겨우 한 달을 수업하고 결국 병이 나 버린 나는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할지를 고민했다. 마음을 내주지 않는 학생들, 나와는 어떤 정보도 교류하지 않는 동료 선생님, 아이들의 수업 방식은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며 무조건 보듬어주라는 담당 직원 사이에서 답답해하면서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새벽까지 자료를 만들고 아침에 아이들과 수업 때 반응을 살피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겨우 안정이 찾아왔다. 아이들도 차츰 마음을 열었고 수업도 내가 원한 방향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도 미비하게나마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끝나고 동료 선생님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두었다.

  이후 다른 선생님이 왔고 상황은 또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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