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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Dec 19. 2023

"선생님, 저 고민이 있어요.

나를 떠나서도 내가 필요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L은 2년동안 나와 수업을 했던 아이다. L의 어머니는 본국에서 남편 사망 후 L을 본국에 두고 먼저 한국에 와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윽고 두 아이를 낳았고 시간이 흘러 L을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L이 처음 왔을 때가 13살쯤 되었던 것 같다. 순진하고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다. 영리한 편은 아니었지만 우직하고 한결같이 성실한 아이였다. 그 당시 우리 반에 전부 남자 아이들 뿐이라 여자 아이인 L은 더더욱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가 없었다. 자연히 내 관심을 더 받게 되었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L과 더 가까워졌다. 당시 L의 가장 큰 고민은 진학과 한국어 실력이었다. 한국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새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이를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라며 자책하던 L은 그러므로 한국어를 빨리 잘 하고 싶은데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새아버지는 두 동생에게 다정한 아버지라고 했다. 다만 자신과 어머니하고만 말을 하지 않는다며 조금 슬픈 기색을 하기도 했는데 L은 늘 그것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내가 한국어를 잘 한다면, 내가 아버지 말을 더 잘 듣는다면. L은 늘 그렇게 조금의 아쉬움과 답답함 속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지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L은 집근처 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그 배경에는 센터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L의 새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이기도 했다), L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즐거움도 잠시 L의 학교에서 센터로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학교에 외국아이가 다니는 경우는 처음이며 되도록 다른 학교에 가길 원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황당했지만 센터 입장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어 학교의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도 L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는데,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식사 시간을 불문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로 며칠 수학여행을 간 동안에도, 선생님조차. 1년을 외로움과 서러움에 여러번 나에게 연락을 취하며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L은 꿋꿋이 버텨 3학년이 되었고 이후에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용고에 진학한 후 이제는 어엿한 한국인으로 학교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종종 전해왔다. 시간이 있을 때 자주 센터에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L이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지 일러주었다. 진심으로, L은 강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의 미용 필기 시험에 응시하고 떨어지길 반복하다 합격을 했고 졸업하기 바로 전 취업에 성공했다. L은 현재 서울에 있는 미용실에 취업을 한 상태이다. 서울에 가기 전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에도 L과 나는 애틋하게 서로에게 감사를 전했고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L은 고민이 있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L의 어려움은 어린 나이에 맛보는 일의 고됨보다 첫 직장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과의 갈등, 그 안에서 고민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처음이 지금 L에게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려울지 감이 왔다. 다 지나갈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 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거라는 걸 아는 어른으로서 L이 짠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직하게 제 할일을 해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다.

  "선생님, 저 고민이 있어요."

  나를 철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는 세상이 아직 좁고 그 나이에 이해하지 못할 복잡해보이는 길 앞에서 나를 찾아 준 사실에 감사하기도 하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참 다정하신가봐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 내면에 아이들을 향한 연민이나 공감대는 있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이란 생각을 스스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하루에 네 시간 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 혼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아이들의 희노애락, 나의 감정의 밑바닥을 공유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늘 제멋대로이고 실수투성이인 아이들이 나를 토닥이고 이해하는 순간이 되면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나에겐 아쉬움이고 아이들에게는 설레임과 두려움이다. 더 잘 해줄걸. 따뜻한 말 몇 마디 더 해줄걸, 지난 시간들이 아쉬운데 아이들은 때때로 내게 기회를 준다.

  "선생님, 저 고민이 있어요."

  나는 그 말에 주저 없이 대답한다.

  "응, 무슨 일이야?"

  이 한 마디가 아이들이 서 있는 세상에서 덜 외로울 수 있는 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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