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기를 내보려고 쓰는 난임 기록
난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년 반, 본격 난임 병원에 다닌 것은 이제 1.5년째다. 그동안 6번의 과배란, 5번의 채취, 2번의 이식, 1번의 임신, 그리고 1번의 유산의 눈물이 있었다.
오늘은 그간의 일을 한번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마음을 정비해보려고 자리에 앉았다.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다니 나도 한번 과거의 나에게서 배워보자는 마음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1) 계속할 것들과 2) 그만할 것들만 생각해보자.
먼저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이 두 가지는 앞으로 잘해주기를 미래의 나에게 당부를 해보려고한다.
1. Eat, sleep, and walk well.
Eat, pray, love가 아니라 난임 생활의 키워드는 Eat, sleep, walk이다. 고른 영양소를 식단 조절하며 잘 먹고, 호르몬 균형을 위해 무조건 11시 전에는 자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 하루 한 시간 걷는다. 이 세 가지가 이노시톨, 코큐텐 같은 비타민보다 우선이다. 물론 가끔 아이스크림을 올린 초콜릿 케이크도 먹고, 마음이 심란해서 2-3시까지 잠이 안 올 때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절제된 식단과 규칙적인 수면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이것은 잘 유지하자. 너무 강박적으로 하려고는 말고!
2. 남편과 멀어지지 말자.
참 많이 싸우지만, 그래도 멀어지진 않았다. 남편의 난임으로 시작한 고행이지만 남편이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 바닥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재작년 시험관 초반에는 정말 남편 탓을 많이 했다. 남 탓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쉽지만 그만큼 그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남편 때문에 인생이 무너진 것 같아서 남편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어졌었다. 이제는 남편도 이 사실에 대해 좀 회복했고, 우리는 예전보다 더 터놓고 이야기하고 난임 관련 책도 함께 읽으며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여전히 뽀뽀만 해도 둘 다 볼이 빨개져서 이 점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만둘 것들은 두 가지 마음가짐이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직접 얻은 레슨이니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1. 나=환자
평생 건강검진 말고는 병원에 가본 일이 없는 나는 2년째 한 달에 평균 5~6번 병원에 가는 지금의 일상이 확실히 낯설다. 그곳에서 나는 환자 번호가 있고, 난임’ 치료’를 받는다. 주사를 10대씩 받아와서 아침마다 배에 스스로 주사를 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초음파를 보고 의학용어가 일상용어가 되었다. 스르륵 나 스스로도 100 퍼센트 환자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꾸 기운이 없고 자주 우울해졌다. 목 뒤로 눈물이 넘어가도록 우는 날들도 있었고, 일주일 내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씨와 이소노 씨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미야노 씨는 암에 걸린 철학자, 이소노 씨는 질병 인류학자이다. 아래는 미야노 씨의 편지 중 한 부분인데 이것을 읽고 나는 미야노 씨가 내 머리를 한 대 갈겨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저는 암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라는 인간의 전부는 아닙니다. 암에 걸린 불운에 분노하며 그 불운에서 어떻게든 인생을 되찾아 스스로 인생을 일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암 환자라는 사실을 100퍼센트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덕에 저는 그런대로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한이 있고 불운이 닥쳐왔지만,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말기 암을 겪어내며 책도 쓰고, 연구도 하고, 지방으로 강연도 다녔다. 그것도 열성적으로! 나는 뭐가 이렇게 힘들다고 기죽고 바닥만 쳐다보는 걸까. 그녀가 스스로 인생을 놓아 버리지 않고 충실한 인생을 사는 모습은 그대로 나의 현실을 비추어주었다. 나는 나를 100퍼센트 난임'환자'라고 고정해버렸다. 전 에너지를 이것만을 위해 쏟아붓고 있다. 나의 모든 정체성이 난임환자이다.
나도 나만의 충실한 인생을 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미야노 씨에게 고개 숙여 감사한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아주셔서. 그런 빛나도록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주셔서.
2. 의사=전지전능
의사에게 기대가 컸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고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환자가 되면 난임 병원을 빨리 졸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그녀는 나를 대신해 고민하고 많은 위험을 고려해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40살이 넘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도 참 순진 해터 졌다. 5차 채취가 의사의 실수로 취소되면서 이 환상이 깨졌다. 그렇다. 이 믿음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모든 위험은 내가 지는 것이다. 의사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내가 온전히 결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치료 전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의사에게 물어보면 된다.
지난 2월 21일. 6차 과배란 중이었다. 내가 보기에 다음 진료가 너무 늦은 것 같아서 하루 먼저 병원에 방문했다. 이날 안 갔으면 또 과배란만 하고 채취는 못할 뻔했다.
나: 너무 유난스러운 환자가 되나 해서 고민했는데, 걱정하는 것보다 좋을 것 같아서 왔어요.
의사: 내일 왔으면 큰 일어날 뻔했어요. 벌써 많이 자라서 곧 채취해야 해요.
나: 아... 그렇군요.
의사: 환자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아요. 제가 보는 환자가 정말 많아서 한분 한분 모두 신경을 온전히 쓸 수가 없어요. 잘 오셨어요.
이 생활의 어둠을 걷어주는 마법의 열쇳말이 있지 않을까? 그 열쇳말을 찾아 참 많이 헤매고 있다. 현재 버전은 ‘작은 용기’이다. 시들어버린 것처럼 계속 의기소침해지는 마음에 뭔가가 필요하다. 미야노 씨처럼 내 삶을 충실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매일 작은 용기가 도움이 된다.
마음을 풀고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는 될 거야는 마음으로 난임 병원에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다녀봐야겠다.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지만 최악의 결과도 꼭 생각하면서. 또 초음파실 앞에서 긴장되는 아침이 있을 거고 걱정에 잠들지 못할 밤이 있겠지만 되도록 바로 눈앞의 것만 보며 지내봐야겠다. 작은 용기를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