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조금만 덜 불안하게!
지금 내 인생은 난소와 자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난 3월. 6차에는 아주 늠름해 보이는 동글동글 균형 잡힌 배아를 이식했는데 또 실패다. 기운이 또 걷잡을 수 없이 하강한다. 안 되는 것을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밤마다 대하소설급으로 써지고 꿈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실패에도 굳은살이 붙는 것 일가? 이번 실패는 '대절망'이 아닌 '중절망'정도로 일주일 정도 울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그리고 나를 좀 돌보기로 했다. '칙칙해지지 말자'는 슬로건을 걸고 4월은 정말 신나게 살았다.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서 봄 구경도 하고, 제주도 여행도 가고, 아침마다 수영도 했다. 12월부터 심리상담도 받고 있는데 이것도 도움이 되었나 싶다. 구겨진 나를 조금은 피는 것에 집중했다.
4월 초 6차 실패 후 유산은 했지만 임신을 시켜주었던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최근 다른 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개원하셨다.) 선생님은 나 같은 상황은 답이 없다고 하셨다. 그냥 꾸준히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수밖에. 고령에 임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40대에 취업준비를 하는 기분이 든다. (사실 난임 병원 밖에서 나는 내가 늙었다거나 나이 먹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치의 선생님 앞에만 가면 내 나이가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다.)
이렇게 5월에 7차를 시작한다. 병원도 바꾸었고 구겨진 나도 조금 펴서 다시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그리고 이번 차수에는 몸과 마음의 기록을 남겨두려고 한다.
2022-05-07 진료 일기: 그제까지는 난소 쉬는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그리고 어제 생리가 시작되었다. 가끔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직 타이밍을 잘 맞추고 있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해 초음파를 봤다. 오른쪽 3개, 왼쪽 1개의 난포가 보인다. 20년에 시작할 때만 해도 9-10개는 보였는데 아무래도 난소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나 보다. 마음이 심란했다. 하지만 4개가 어디냐는 생각도 들어서 이 생각만 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과배란 약에 반응이 좋으면 추후에 더 보일 수도 있다고 위로해주셨다. 난임 의사는 위로하는 것이 업무의 일부인 것 같다. 나도 고생이지만 선생님도 매일 이런 칙칙한 사람들을 보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2022-05-09 몸의 일기: 과배란 2일 차. 주방에 가서 냉장고에 들어있는 과배란 주사약을 꺼내고 BTS 노래를 틀었다. (BTS를 들으며 주사 맞으면 응원이 된다.) 주사 3대를 양쪽 아랫배에 번갈아 가며 놓았다. 따끔하지만 그렇다고 막 아프진 않다. 잠시 후 주사 맞은 자리가 빨갛게 조금 부풀어 오르고 약간 간지럽다.
4, 5, 6차 하면서 5개월 만에 몸무게가 3kg가 불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4월 말부터 샐러드 식단, 매일 아침 스쿼트 100개, 1시간 걷기를 하고 있다. 과배란 하면서도 계속해봐야겠다. 여름도 다가오는데 무너지는 몸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일단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운동하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2022-05-11 몸의 일기: 과배란 4일 차. 5kg 덤벨을 들고 스쿼트 100개로 하루를 시작했다. 골반에 혈류량이 늘어서 난포가 하나라도 더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 하며 4일 차 주사 3대를 맞았다. 집에 초음파 기계가 있어서 매일 자라는 것을 봤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도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시간 날 때마다 걷거나 골반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일 아침이면 알 수 있겠지.
2022-05-12 진료 일기: 과배란 5일 차. 아침 07:30 병원에 도착해서 초음파를 봤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초음파는 언제나 떨린다. 일단 내막 체크. 0.75로 두꺼워져 있었다. 선생님도 내막은 좋고요 하신다. 자 이제 난포들을 보자. 오른쪽 난소. 동글동글한 난포가 3개 자라고 있었다. 안녕 안녕 인사하는 것 같았다. 까만 동그라미들. 자, 이번엔 난포 하나만 있던 왼쪽. 내 눈에는 큰 것 하나만 보여서 역시 4개구나 했는데 뒷 쪽에 두 개가 빼꼼히 보고 있었다. 오! 다행이다! 주사실에 가서 조금 긴장이 풀린 마음으로 오늘의 주사 4대를 다 맞았다. 주치의 샘이 이 정도면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하셔서 그 말이 참 감사했다.
전원하고 가장 좋은 점은 대기 시간이 약 2시간 줄은 것인데 병원에 가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 대기실에서 서로의 불안에 전염되는 시간이 없으니 그 점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초음파도 보면서 주치의 선생님이 직접 설명도 해주시니 훨씬 자연스럽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채취는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라고 하셨다. 5일만 잘 지내보자. 일단 채취만 6개가 잘 되기를 주사기 받아 온 두 손을 꼭 쥐며 기원해본다.
2022-05-13 난임 일기: 과배란 6일 차. 주사를 아이스팩에 싸서 07:00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오늘은 정자 이관의 날이라 아침부터 서둘렀다. 주사도 집 밖에서 맞고 오전은 이관에만 신경을 썼다. 마곡에서 강남으로 다시 마곡으로 오전 내내 도로 위에서 액체 질소가 가득 담긴 통을 이동했다. 여러 차례 신분확인과 서류 확인을 하고 11시에 완료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하고 나니 또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2022-05-14 진료 일기: 과배란 7일 차. 두근두근 2차 초음파 날이다. 왼쪽 3개, 오른쪽 3개로 그제 봤던 친구들이 조금씩 더 자라 있었다. 오른쪽 18, 13, 12mm로 자라 있었고, 왼쪽은 19, 13, 11mm로 자라 있었다. 내막은 9.3이었다. 신선 이식을 한다면 21일이 된다고 하셨고 5일 포배기 배아가 2개 이상이 나오면 pgs를 시도해보신다고 했다. 아 떨리는 3일이 기다리는구나. 그래도 이번엔 그렇게 매우 떨리지는 않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고 있는 류시화 작가의 시와 산문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과정 자체가 인생이고 그날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많이 와닿았다. 5년 후 돌아보면 결과에 상관없이 오늘의 내가 부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시험관에 도전하고 싶어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조기 배란될까 봐 두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좀 걸으면 또 배란되는 것이 아닐까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배란 억제제를 맞고 있고 지금까지 6번이나 잘 채취되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배란이 되더라도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괜히 걱정하면 나의 하루만 어두워질 뿐이다.
류시화 님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계속 잊게 되어 다시 복습해야 한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나온 글귀를 만트라로 외우며 3일을 보내야겠다. 일단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며 사는 것 말고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모든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가 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가, 얼마나 많이 그 순간에 존재했는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행 그 자체이다.
사실 전 세계의 산과 정글 속에서 행해지는 트레킹의 진정한 의미는 목표 지점에 서둘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했는가'에 있는다. 그 즐거움과 감동이 고난을 불사른다. 순간순간을 즐기면 발걸음도 가볍고 자연스럽게 목적지로 나아간다. 그 기쁨이 신비하게도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때 나아가는 길이 더 명확해진다.